매일신문

이웃 정 잇는 '사랑 중개사'

지난 27일 오후 4시30분쯤 대구 만촌1동 장애아 가정인 '룸비니동산'. 승합차에서 운동복·수건·기저귀 등 300여점과 참치 상자가 내려졌다.

룸비니동산 보모들이 아이들에게 일일이 옷가지를 입혀보며 옷매무새를 챙기자 지켜보던 이동철(44)씨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이날 옷가지랑 참치를 챙겨 온 사람은 중구청 공무원인 이씨. 그가 몇년 전부터 하고 있는 일은 '사랑 중개사'. "1994년 대봉2동사무소에 근무할 때 영세민 자녀 20명에게 수학·영어를 가르친 적이 있었습니다.

몸이 아파 8개월만에 그만뒀지만 그때 아이들과 부대끼는 중에 결심했지요.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다 마음을 정한 것이었습니다".

이씨가 2년 전부터 주력하는 일은 뜻 있는 기증자들을 찾아 내 물품이 필요한 어려운 이웃과 연결하는 것. "처음엔 걱정을 많이 했지만 의외로 취지에 공감하는 업체들이 재고 옷·신발·생활용품 등을 흔쾌히 내놓습니다".

20여개 업체로부터 기증받은 물품들을 갖고 '주민 한마음 나눔의 장'을 열어 수익금으로 생활용품을 마련, 군위 '청소년 바울의 집'(부계면)과 대구 '노숙자쉼터'(삼덕3가)에 전할 때는 아찔하더라고 했다.

"혹시 제대로 팔리지 않으면 어쩌나, 수익금이 너무 적으면 어쩌나... 며칠 밤잠을 설쳤습니다.

다행히 잘돼 '나눔장터'는 그때 이후 정기적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픔도 있었다고 했다.

처음엔 주위 동료들조차 이런 활동에 회의적이었고 일부는 시기의 눈초리도 보냈다.

그러나 도와주는 사람은 갈수록 늘었다.

대학생 봉사자들도 '나눔장터'에 두 팔을 걷고 나섰다.

태풍 '루사'가 전국을 휩쓸었던 작년에는 지역 40여개 업체가 의류·신발 등 5천여점을 선뜻 내놨다.

이걸 들고 대구 남산동 사회복지회관 봉사 대학생 24명과 함께 '나눔장터'를 열어 수익금 800만원으로 수재민을 도울 수 있었다.

"3남매 아이들에게 부끄럽잖은 아버지가 되도록 노력할 뿐입니다". 이씨는 대구 동인3가 부녀회와 함께 생일 케익을 선물하자 홀몸노인들이 "내생에 이런 값비싼 생일 선물은 처음"이라며 눈물을 흘리던 일은 잊혀지지 않는다고 했다.

전창훈기자 apollonj@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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