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당선자의 초심

노무현 대통령당선자가 닷새전 부인 권양숙씨를 서울 명동 신세계백화점에 데리고가서 결혼30주년(1월29일) 기념 백금18K 반지를 끼워주었다.

'30년만에 다시 끼워준 커플링'이라고 신문마다 화제를 삼았다.

돌아가신 시어머니가 당신의 반지.목걸이를 녹여 결혼예물로 주었다는 그 반지. 당선자가 고시공부할때 녹음기는 필요하고 돈은 없어서 몰래 팔아 바꿨다는 그 반지. 당선자는 그날 김해 고향마을에서 "결혼 30년동안 단 한번도 생일.결혼선물을 한 적이 없어 오늘 만큼은 고생한 마누라에게 반지라도 하나 선물하고 싶었다"고 했다.

4050세대에겐 감동적일지 모르나 2030들에겐 바로 "낙제감 신랑이란 이런거요"하는 고백 일 수 있다.

아니, 결혼 30년간 선물 한번 안했다니? 경상도 남자들 다 이런거 아냐?-당선자의 장점은 이렇게 진솔하다.

투박하고 촌스럽고 때로는 오해받기 딱좋은, 정제되지 않은 표현에서 느껴지는 불안감과 정감(情感)이 5년동안 어느쪽으로 다듬어질지 궁금하다.

*"노(No)"라고 말하는 노(盧)

이런 노무현식 수사법은 사흘전 대구의 국정토론회장, 상공인과의 대화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삼성상용차 협력업체 대표가 부도위기에 처했다며 정부차원의 대책을 호소하자 당선자는 자본주의 원리를 들어 "죄송하지만 어쩔수 없다"고 답변했다.

"재벌총수에게 사재를 털어서라도 해결하라 한다면 이는 사유재산을 인정치 않는 것이 된다"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다른 대통령, 다른 장관들이 이 요구를 받았다면 어물쩡 피해가지 절대로 노(No)하지 않았을 것이다.

듣기엔 섭섭하지만 미련없이 확실한 답변이기도 했다.

역대 통치자들이 걸어온 발자취에서 한국의 '대통령'이란 이미지는 긍정적이지 않다.

산전수전이란 표현이 적합할만큼 음울하고 부정적이다.

노무현 당선자는 어떨까. 그도 청와대에 들어가면 별 수가 있을까? 권력에 맛들이고 인(人)의 장막에 싸이다 보면 고생했던 옛이야기도, 개혁의 초심(初心)도 다 까먹는 것 아닐까? 10년전 천신만고끝에 금배지를 단 대구.서울의 모모의원처럼, 국회등원 첫날 '자전거 출근'한다고 법석(?)을 떨었던 그런 작심삼일(作心三日)을 유권자들은 되풀이 보고 싶지가 않은 것이다.

그에게 표를 던진 국민들, 표는 주지 않았지만 기대에 차있는 많은 사람들은 그에게서 '대통령의 새로운 행동양식'을 보고 싶어 한다.

대통령이 되기 전과 후의 행동양식이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은 바로 제왕적 대통령들이 덧칠해 놓은 부정적 이미지를 '믿음의 대통령'으로 탈바꿈하는데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버려야할 청와대증후군

우선 박관용 국회의장이 요구한 바, 대통령의 국회연설은 5년내내 직접하기 바란다.

대독(代讀)총리를 거부하는 것이야말로 국회를, 국민을 존중하는 첫 행동이다.

청와대 기자회견 모양새도 바꿔야 한다.

질문요지 미리 받은후 모범답안을 발표하는 식의 그 '계엄령'같은 분위기는 정말 싫다.

실수도 하고 웃음도 터지는 '짜맞추지 않은'분위기를 보고 싶다.

이런 분위기의 책임은 사실 전적으로 청와대 비서실이 져야한다.

전통(全統)시절, 밤 9시 '땡'소리만 나면 "전두환 대통령은…"하고 시작되던 그 '땡전뉴스'에 국민들이 고개돌린 이유, 인수위 사람들은 잘 알것이다.

전통(全統)때부터 지금까지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무회의, 대통령 순시때 각 시.도의 보고회 풍경도 국민들이 거부감을 느끼는 장면이다.

가슴에 소위 '개패'를 단 사람들이 숨을 죽인채 앉아있는 모습, 대통령이 입을 뗄 때마다 토씨하나 틀릴새라 또박또박 받아적는 어전회의 같은 풍경은 가장 보기싫다.

오죽하면 김대중 대통령도 그만 받아적으라고 했을까. 그런데 최근 당선자가 회의를 주재한 대통령직 인수위도 경직된 그 분위기는 닮아 있었다.

보태어, 걱정스러운 것은 이제 공직사회에 번질'토론공화국'이란 것도 까딱, 소리만 요란해지는 것 아니냐 하는 점이다.

제목은 국정토론회라 붙여놓은 '당선자 지방순회 토론'이 사실 토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선자가 다음달 25일, 역대 신임대통령들이 취임식때 받아온 무궁화대훈장을 받지않기로 한 것은 참 잘한 생각이다.

5년간 봉사한 후 퇴임할때 받겠다는 뜻은 대한민국 최고의 훈장을 받을만큼 '성공한 대통령'이 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노통'은 고향사람들의 염려도 5년내내 잊지말기 바란다.

고향을 방문하던 날 친척아저씨는 이렇게 신신당부했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데이. 아들내미들이 어디서 돈받고하면 나라 망한데이…".

강건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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