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자노트-사고현장 보존 허술

'폴리스라인엔 폴리스가 없다?'

29일 오전 9시쯤 대구 비산동 주택가 화재 현장. 전날 화재로 주민 1명이 사망한 곳이다.

노란 경찰 통제선(폴리스라인)이 집 주위로 둘러쳐 있었지만 한 가스 배달업소 관계자가 집안으로 들어갔다.

이 사람은 문 손잡이에 묶인 경찰 통제선을 풀고 부엌.안방 등 화재가 난 집안 구석구석까지 돌아봤다.

그러나 경찰의 제지는 없었다.

경찰은 사고 당일 밤 11시 이후 현장에 통제 인력을 배치하지 않은 상태였다.

화재 현장에 폴리스라인만 설치했을 뿐 실제로는 현장 보존에 허점을 드러낸 것이었다.

이 사건 현장에 대해 경찰은 전날 1차 감식만 마쳤을 뿐 지방경찰청의 정밀감식은 30일로 예정돼 있었다.

사망자의 정확한 사인도 이날 오후 3시나 돼서야 나왔다.

'경찰 업무편람'(경찰청 훈령)은 화재 현장 출입은 현장조사가 끝날 때까지 금지시켜 현장 보존에 유의토록 규정하고 있다.

또 수사 지침서인 '경찰 실무전서'도 현장 보존 중 특이 사항을 보고토록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대구 서부경찰서 관계자는 "사고 당일 1차 감식 때 사진.비디오 촬영으로 현장을 기록했고 사체도 옮긴 후여서 통제인력을 배치하지 않았다"며 "이론상으로는 인력을 배치해야 하지만 효율적인 경찰력 활용을 위해 불가피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 15일 대구 중구에서 발생한 상가 화재 때는 재산피해만 났는데도 불구하고 중부경찰서가 20명의 의경을 투입해 3일간 현장을 보존했다.

이 과정에서 화재 현장의 어수선한 분위기를 틈 타 불 난 상가에서 휴대전화 등을 훔치던 3명이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비산동 화재 사건 현장 경우 사람까지 숨졌는데도 경찰이 재산피해 현장보다 더 소홀히 취급한 것이 증명된 셈이다.

대구경찰청 과학수사계 관계자도 "경찰통제선 설치 이유는 사고 장소에 관계자 외의 출입을 막아 현장 훼손을 방지하려는 것"이라며 "해당 경찰서는 일반인 출입에 대해 주의를 기울였어야 했다"고 말했다.

최병고 사회1부 c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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