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한국사회의 화두는 '변혁'이다.
역사는 변혁의 과정을 거치면서 발전(?)된다고 하지만, 한국에서 이 화두는 문화적 역사적인 개념이 아니라, 오히려 통치의 개념으로 쓰여져 왔다.
그래서 정치 권력이 바뀔 때마다 수없이 많은 변혁이 시도되면서 그에 따라 화려한 이념이 제시되었다.
민주주의 방식에 의해서 선출된 대통령들은 이 구호를 마치 보검처럼 국민 앞에 예외 없이 내놓았다.
그 때마다 국민들은 뭔가 달라지는구나 기대를 갖고 참여하기도 하였고, 구경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거친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것은 낡은 구호뿐이었다.
이렇게 자주 그 변혁의 구호만 되풀이 되다보니, 이제 국민들은 오히려 식상해졌다.
막강한 권한과 신뢰를 한 몸에 지니고 있는 한국의 대통령이 내건 그 변혁의 기치는 화려하고 정당한데 그 결과는 왜 허구의 구호만이 남게 되었는가? 이제 우리는 그렇게 열망하던 국민의 직접선거에 의해 네번째로 선출된 대통령이 새 구상을 펼치려는 이 마당에, 이 문제를 좀 정직하게 성찰해야 할 필요가 있다.
왜 변혁은 성공을 거둘 수 없었던가. 그 이유야 많겠지만 그 중 중요한 것은 그 변혁의 주체를 잘못 인식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권을 갖고 있는 대통령이 할 일과 못할 일을 구분하지 못한 것도 한 원인이다.
변혁은 그 주체에 의해서만 성패가 결정된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고, 두 번째는 대통령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오만한 무식을 동시에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변혁을 성공적으로 이룩하려면 그 분야에서 일하는 주체자가 변혁되어야 하고, 변화된 그들이 그 변혁을 주도해야 한다.
그러기 때문에 변혁의 주도자는 대통령이 아니라 변혁의 주체이다.
여기에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이며 집권당의 지도자로서의 변혁의 몫을 철저하게 감당하면 된다.
왜냐면 한 국가에서 정치권과 국민의 살림살이를 직접 맡고 있는 행정 관료의 변혁은 모든 변혁을 주도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하나 덧붙인다면 대통령은 국가 비전으로 그 변혁의 당위성을 국민들에게 설득하며 정부가 도와줄 일이 있으면 아낌없이 도와주는 것으로 족하다.
대통령과 정치인들은 정치제도의 변혁에 앞서 '국민이 대통령이다'는 아름다운 구호처럼, 정치권력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한국의 대통령은 대한민국주식회사의 임기제 고용사장이고, 공무원들은 그 주식회사의 사원들이다.
그리고 정치가들은 주주들로부터 위임을 받고 주권을 행사하는 자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동안 한국의 대통령과 정치가와 관료들의 모습은 어떠했는가? 국민을 위한다는 통치자일수록 마치 제가 자본을 출자하여 만든 회사로 생각해서 철저하게 족벌체제나 친위체제로 유지해 왔다.
공무원은 대주주의 눈치만 보면서 일했다.
그래서 교육계를 변혁한다고 해서 교원들을 뒷전으로 몰아놓고 교육 행정을 맡은 자들이 변혁의 주체가 되었고, 경제계를 변혁한다고 기업 경영의 자율성을 제한하였고, 더구나 웃지 못할 일은 정치권력자가 앞장서 국민의 의식까지 개혁하겠다고 덤비는 무모한 일을 용감히 자행했던 것이 최근 통치자가 내놓았던 변혁이었다.
두 번째는 제도를 통해서 모든 것을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제왕적 발상이 문제가 된다.
변혁은 주체인 사람이 변하지 않고는 성공을 거둘 수 없다.
제왕도 사람을 변화시키기는 불가능하다.
부모도 자식의 의식을 변혁시킬 수 없다.
그런데 한국의 대통령들은 국민의 의식을 변혁시키겠다고 덤볐다.
그래서 조직을 만들고 돈을 쓰고 가까운 사람을 그 변혁의 주체자로 등용하고, 이렇게 어리석은 일을 되풀이했다.
'대통령이 할 일은 많지 않다'는 통치 권력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이 변혁의 시대에 우선해야 할 변혁의 내용이다.
인상적인 기억 하나 떠오른다.
어느 대통령이 연초에 고향으로 내려가서 어른께 세배하는 자리였다.
'단군 이후 쌓여온 부정부패를 바로 잡으려니 매우 바쁩니다' 고 자신의 형편을 인사말하던 장면이다.
얼마 후에 그 아들이 쇠고랑을 찼다.
이렇게 한국의 권력자들은 하나님도 하기 힘든 일을 할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
이제 대통령 당선자와 그 주위에 몰려든 사람들은 진정으로 자신은 개혁의 대상이 아닌가 생각해야 한다.
정치적 도덕성에 흠이 없는 사람일수록 이 덫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현길언 한양대교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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