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벼슬하며 그대를 생각하노라/정창권 풀어씀/사계절출판사
'그는 채 날이 밝기도 전에 대궐로 출근, 임금이 내리는 아침 술을 마신 뒤 근무하고 1년에 네번 쌀.보리.명주베.삼베 등으로 지급되는 월급을 받았고 재테크에 성공, 47칸짜리 새 집을 지어 첩과 노닐다가 부부싸움도 해가면서 노후를 편안히 보냈다'.
조선조 관리들. 그들은 정말로 편안한 백성이었다.
부와 신분을 세습 받고 유교체제의 갖가지 특혜에다 부와 명예를 함께 누린 그들. 그들의 실제 생활은 어떠했을까. 월급은 얼마나 받았고 어떤 '재테크'로 노후를 준비했을까.
역사는 정사만으론 제대로 이해하기 쉽잖다.
조선조 관료사회의 생생한 생활모습 역시 그렇다.
조선조 관료로 선조때 20년 넘는 유배생활뒤 다시 관직에 나갔던 미암 유희춘의 한문일기 '미암일기'는 이런 궁금증 해소에 적잖게 도움된다.
11년에 걸친 일상 생활을 기록, 조선조 개인일기 중 가장 방대한 '미암일기'를 정창권씨가 소설 형식으로 재구성, 관직생활과 살림살이.나들이.재산증식.부부갈등.노후생활 등으로 나눠 16세기 양반가정의 생활상을 재현시켰다.
미암부부는 상속재산으로 토지를 사들이고 버려진 땅을 일궈 논밭으로 개간 혹은 빚내 토지를 구입하는 등 재테크로 재산증식에 성공해 100명의 노비를 소유하는 등 당시도 오늘처럼 빈익빈 부익부의 현상과 가진자의 욕망을 그대로 보여준다.
미암은 당시 1월과 4.7.10월에 급여로 쌀13섬과 보리 1섬, 명주베 1필, 삼베 3필을 받았고 이외에 노루 한마리와 말린 꿩 네마리, 말린 대구 네마리, 말린 큰 새우 네두름, 젓 한항아리 등을 하사받았을 뿐인데도.
또 미암이 15세 아래의 첩을 두었고 그의 장인과 아들 및 사위도 첩을 두었으며 이 때문에 미암부부는 치열한 싸움을 벌였고 편지로 상대를 나무랐다.
한편 당시는 유교 외 불교.도교의 사상이 공존하고 여성의 권익을 존중하는 전통이 남아 있었으며 비교적 개방적인 사회였음이 드러나고 있다.
미암 부인은 결혼하고도 친정에서 부모를 모시고 살았고 부모가 돌아가신 뒤로는 집과 전답을 물려받아 조상의 제사를 지냈다.
상속에서 균분원칙이 지켜졌으며 아들.딸 서로 돌아가면서 제사를 모시는 등 남녀평등의 철저함도 보여준다.
280쪽. 1만2천원.
정인열기자 oxe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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