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하외이서 신대륙으로
1960년대 후반 이곳은 미국 이민이 더욱 본격화되면서 한인들이 집결하기 시작해 첫번째 코리아타운으로 번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인근 올림픽(Olympic)가에 옛 명성을 넘겨준 채 광장 표지판만이 조용히 옛 흔적을 알려주고 있을 뿐이다.
도산 광장에서 차를 타고 북쪽으로 10여분만 나서면 올림픽가가 등장한다.
이 일대 건물에 내걸린 간판에서는 도통 영어를 찾아보기 힘들다.
'××깍두기집' '○○한방의원' 등 사방이 한글로 뒤덮여 있어 도대체 미국 땅이 맞는지 조차 헷갈릴 정도다.
여기가 바로 LA 코리아타운. 이 곳을 중심으로 LA 일대에는 현재 약 60여만명의 한인들이 생활하고 있다.
1903년 하와이에 첫발을 내디딘 지 100년이 지난 지금 미국 전역의 한인 수는 미 국내 공식 집계로만 약 107만명이며 비공식 집계로는 210만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LA 뉴욕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휴스턴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미 본토 전역에 고루 정착해 있다.
과연 어떻게 이 많은 사람들이 낯선 땅에 건너 와 자리를 잡게 된 것일까. 1905년 이후 하와이 사탕수수 밭에서 낮은 임금과 혹독한 노동환경에 지칠대로 지친 한인들 중 일부는 3년간의 계약노동이 끝나자 하나 둘 씩 하와이를 떠나기 시작했다.
지상낙원에서 '돈나무'를 캐 금의환향하겠다는 꿈은 일단 접어두고 제2의 인생을 다짐하며 미 본토로 흘러들었다.
1910년까지 약 2천명의 사탕수수 밭 노동자들이 하와이에서 가까운 미 서부 샌프란시스코와 LA 등지로 이동했다.
미주 한인이민100주년 남가주기념사업회 공동회장 서동성 변호사는 '하와이 초기 이민한인들은 희망을 찾아 다시 미 본토로 넘어왔지만 아무 것도 가진 게 없어 대부분 캘리포니아의 드넓은 과수농장에서 오렌지와 포도 복숭아를 따는 농장 노동자로 살아야 했다'면서 '그래도 조국의 독립을 위해 마치 자율적으로 세금을 징수하듯 임금의 상당액을 독립자금으로 떼 상해임시정부로 보내는 등 독립운동에 앞장섰다'고 설명했다.
이후 약 40여년 동안은 미국으로 향하는 이민 물결이 잦아들었다.
일제 강점기에 정치망명을 넘어오거나 유학생 신분의 이민자들이 대부분이었으며 그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고학력자가 많은 이 시기의 이민자들은 대학을 중심으로 뉴욕 워싱턴 등으로도 뻗어 나가 서서히 미 동부 이민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1910년 미 전역에 7천여명이던 한인의 수는 1950년이 돼도 약 1만명으로 늘어나는 데 그친다.
그러나 한국전쟁은 한동안 잠잠했던 한인들의 미국 이민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됐다.
이 때는 참전 미군과 결혼한 한국 여인들의 미국 이민과 전쟁고아의 입양이 본격화돼 10년간 약 1만5천명이 추가로 미국에 들어섰다.
1965년은 한인 미국 이민사의 획기적인 전환기였다.
결정적 계기는 바로 1965년 미국의 이민법 개정이다.
당시까지 유럽 백인에만 이민을 허용해 왔던 미국이 모든 인종에 대해 이민을 전격 허용하기 시작했다.
1965년 이후 제2 이민 물결
이로써 첫번째 한인 이민 물결이었던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행 이후 '제2의 이민 물결'이 거세게 몰아쳤다.
60년대 말까지 매년 1만~2만여명의 한인이 보따리를 싸들고 미국으로 밀려들었다.
70년대에 이르자 그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 한 해 약 3만명이 '아메리칸 드림'을 좇아 아메리카대륙에 상륙했다.
칼스테이트 로스앤젤레스 주립대 사회학과 유의영 교수는 "대부분이 단신으로 미국 땅을 밟았던 초기 이민과는 달리 이 시기에는 가족단위 이민이 주류를 이뤄 비로소 미국내에 한인 커뮤니티가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다"며 "60년대 말부터 밀려든 한인들이 LA와 뉴욕 등 대도시에 집중적으로 몰려 상업을 바탕으로 정착하면서 지금의 한인 타운이 형성되기 시작해 70년대 초반 매우 번성한 한인 공동체가 세워지는 등 실질적인 의미의 미 본토 이민이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실제 2000년 미 상무부 인구조사국 인구센서스에 따르면 1960년까지 50여년간 미 한인 이민자는 2만5천여명이 늘어나는 데 그쳤지만 이후 10년만에 무려 4만5천여명이 증가, 1970년에는 약 7만명으로 늘었다.
이어 1980년에는 35만여명, 1990년 약 80만명으로 늘어 폭발적인 증가세가 지속된다.
한미연합회(KAC) 찰스 김 사무국장은 "미 본토를 중심으로 본다면 실제 한인 이민의 줄기는 1960년대 말 이후에 집중돼 있어 '30년 상인의 역사'로 규정할 수 있다"며 "이들 대부분이 언어 장벽과 학력 등의 한계을 극복하지 못해 미 주류사회에 파고들지 못하고 식당 세탁소 봉제공장 식료품점 등 상업을 중심으로 정착했다"고 말했다.
1980년대에 들어서는 기존 이민자들의 가족 초청으로 꾸준히 이민이 이어지다 1988년을 고비로 한국 국내 경제가 급속히 성장하고 정치 상황이 다소 안정되자 이민 행렬은 점차 둔화된다.
최근에는 한 해 1만5천여명으로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100년이 지난 지금 한인들은 미국내 아시아계 인구의 10% 가량을 차지하며 중국과 필리핀 인도 등에 이어 5번째로 큰 이민족으로 성장했다.
로스앤젤레스=글·사진 이현우기자 hooree@busanilbo.com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