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긴급진단-위기의 지방대

지방대는 '빈곤의 악순환'의 전형적인 모델이다.

지방대가 왜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명쾌하게 답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그 원인들을 하나씩 살펴보면 지방대의 위기는 이미 예견된 현상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무엇보다 정부의 잘못된 대학정책이 첫 손에 꼽힌다.

90년대 들면서 오락가락하는 대학정책으로 대학 수는 기하급수로 늘어 양적으로는 크게 팽창했으나 지방대 육성 등 질적 향상은 이를 따라가지 못했다.

지난 93년 127개였던 전국의 4년제 대학이 2003년 현재 200개가 넘어섰다.

10년새 70여개가 늘었다.

지난 94년 '대학설립 준칙주의'가 도입되면서 대학설립이 지방을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이뤄져 전국 4년제 대학의 62%가 지방대학이다.

더욱이 대학정원은 미래수요에 대한 면밀한 예측도 없이 자율화하는 바람에 최근 10년간 매년 20~40%씩 늘었다.

수도권 인구집중을 막는다는 미명하에 수도권 대학의 정원은 묶어둔 채 지방대학의 입학정원을 자율화시키는 바람에 지방대의 정원이 무분별하게 확대돼 큰 문제점을 낳고 있다.

결과적으로 수도권대학은 희소가치가 높아진 데 반해 지방대는 천덕꾸러기가 되면서 설상가상 지방대 출신의 취업 불이익 등 폐해가 이어지고 있다.

안동대 국학부 임재해 교수는 "20~30년전만해도 지방대들이 인문 학문의 중심이 되는 등 나름대로 자긍심과 역할 비중이 높았다"며 "그동안 정부의 정책 오류로 인해 일류대학이 서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서울에 있는 대학은 모두 일류대학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었다"고 비판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2003학년도의 경우 고교졸업생 수가 대학 정원보다 1만7천명이 모자라면서 각 대학마다 정원 미달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그나마 확보한 학생들도 미등록, 휴학, 자퇴 등 결원이 생겨 대학들은 부족한 인원을 채우기 위해 수시모집이나 추가 모집, 편입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형편이 이렇다보니 대학 당국과 교수들의 신경은 온통 입시에 쏠리게 되고, 연구는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 빠졌다.

교육부의 잘못된 예측이 빚어낸 지방대의 문제점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대학을 제대로 육성하지 않고 현상유지에 급급한 행정편의적 발상으로 인해 지방대는 거의 인적, 물적 고갈상태에 빠지는 꼴이 됐다.

교육부의 재정지원이 수도권 대학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지방대는 여전히 홀대받고 있다.

상당수 지방대 관계자들은 "쥐꼬리만큼 지원을 해주면서 일일이 규제하고 감독하는 바람에 죽을 맛"이라고 밝혀 정부 지원이 얼마나 주먹구구식인가를 짐작하게 했다.

대학을 획일적 틀에 가두려는 정부의 대학정책시스템 부재 또한 지방대를 위기로 몰고간 다른 원인이다.

대학의 자율성을 인정하지 않고 손쉽게 관리하려는 교육부의 발상은 지방대의 특성화를 가로막아 자연히 우수학생들은 여러모로 여건이 나은 서울로 몰리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지방대 위기로 나타난 현상들은 어떤가. 가장 먼저 눈에 띄는 현상은 우수학생 역외 유출이다.

대학 졸업장도 중요하지만 우선 밥벌이가 중요하다는 게 요즘 학생들의 인식이다.

따라서 취직이 어려운 지방대보다 수도권대학에 몰리면서 지방의 인재 공동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경북대 취업장학과 추성엽 취업팀장은 "지난해 경북대 취업률은 54.5%로 떨어졌다"며 "10년새 취업률이 20~30%이상 낮아져 졸업생들의 취업난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지역의 대표적인 국립대학이 이 지경인데 다른 대학들이 겪고 있는 형편은 보지 않아도 뻔하다.

도서관은 취업준비실이 된 지 오래이고, 연구는 배부른 소리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지방대의 살풍경은 자연히 지역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켜 학부모들도 취직우선주의에 빠지면서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자식을 서울의 대학에 보내려는 바람에 사교육이 판을 치는 형국이 되고 있다.

재학생들의 휴학과 자퇴도 심각한 수준이다.

지역 사립대들은 결원을 막기 위해 일찌감치 편입에 초점을 맞춰 운용하고 있고, 심지어 경북대도 올해부터 입학 첫 학기의 휴학을 제한하고, 일반편입실시 등 학칙개정을 통해 결원 방지에 나서면서 지역 사립대들을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영남이공대 김춘중 교무처장은 "입학정원 미달사태가 속출하고 대학마다 편입 전쟁으로 인해 기술인력을 배출해야 할 전문대가 제 기능을 잃고 있다"며 "실업계 학생들마저 4년제 대학을 선호하는 바람에 전문대가 설 자리가 없는 등 대학의 역할 분담은 이미 물 건너간 지 오래"라고 말했다.

지방대의 위기는 지방의 위기다.

대학이 지역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 만큼 크다는 얘기다.

지방대가 무너지면 지역사회는 그 파장으로 인해 혼란을 겪게 되는 등 새로운 빈곤의 악순환을 낳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새 정부와 국민들이 무엇을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지 자명해진다.

서종철기자 kyo425@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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