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장고하는 검찰

검찰이 현대상선 대북송금 의혹사건에 대한 본격 수사착수 여부를 놓고 '장고'를 거듭하고 있다.

현대상선 제출자료를 근거로 한 감사원의 대북송금 확인 발표, 청와대와 북한측의 대북송금 간접 시인 등 일련의 사태를 거치면서도 검찰이 사법처리 문제와 맞물려 수사착수 여부를 쉽사리 결론내지 못하고 있다.

검찰 고민의 요체는 '대북송금' 문제를 과연 사법처리 할수 있느냐 여부다.

일련의 '통치행위'에 대한 사법처리 가능성에 대한 법이론상 논란과 더불어 대북송금의 정확한 경위와 명분을 수사를 통해 과연 밝혀낼 수 있을지 여전히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서울지검 간부진과 수사팀은 설 연휴 마지막날인 2일 전원 출근, 자료검토와 구수회의를 거듭하며 수사방향에 대한 최종 조율작업을 벌였다.

김각영 검찰총장과 유창종 서울지검장 등 검찰 수뇌부도 3일 중 수사팀의 보고를 받은 뒤 긴급모임을 갖고 검찰입장을 정리할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검찰은 3일 중 감사원으로부터 현대상선 관련자료 일체를 넘겨받아 검토작업에 들어가되 내부논의와 의견수렴을 거쳐 수사계속 및 수사중단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것.

검찰 관계자는 "먼저 자료검토를 통해 사법심사 대상이 되는지에 대한 사실관계가 명확히 규명돼야 한다"며 "신중히 상황을 지켜보고 검찰내부 의견을 모아 수사방향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 일각에선 이번 문제가 이미 검찰의 손을 벗어나 정치적 해결을 요구하는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사법처리를 전제한 법률적용의 어려움도 있고 남북관계 등 미묘한 문제도 걸려있다는 판단에 근거한 것이다.

특히 여권 관계자들 입을 통해 '엄정수사'보다는 정치적 해결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만만찮게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검찰이 스스로 수사의지를 보이지 않을 경우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른 대북송금의 실체규명 작업을 포기한 것으로 간주돼 상당한 역풍과 여론의 화살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어서 검찰을 더욱 고심하게 만들고 있다.

검찰은 대북송금을 둘러싼 각종 의혹이 규명되지 않은 상황에서 '통치행위' 등을 이유로 수사하지 않는다면 또다시 검찰에 대한 국민신뢰를 잃게되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실체규명'이라는 명제를 무시한 채 정치권 등의 눈치를 살피며 '좌고우면'한 듯한 태도가 국민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도 검찰로선 걱정이다.

한편 수사 착수 문제를 놓고 검찰내부를 비롯한 법조계 의견이 각양각색이어서 검찰의 최종선택이 더욱 주목된다.

당초 대출비리 의혹 수준이던 이번 사건이 대북송금 사실이 확인된 공안사건으로 변질돼 국민적 의혹 해소를 위한 진상규명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기소를 전제로 하는 검찰수사의 성격상 사법처리 대상도 불투명한데 무슨 수사냐며 회의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다.

서울지검 한 검사는 "정치적 이해관계도 걸려있는 사안인 만큼 국정조사에 들어간다면 검찰수사를 병행하긴 힘들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반면 법무부의 한 관계자는 "언론보도와 달리 청와대 공식언급에는 '통치행위'라는 말이 없었다"며 "좀더 상황을 지켜보고 수사여부를 신중히 결정해야 할 것"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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