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추곡수매가 첫 인하, 충격에 휩싸인 농촌

정부의 첫 추곡수매가 인하로 개방농정의 파고가 눈앞의 현실로 닥치자 농민들은 충격과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쌀농사의 빗장이 온전히 열릴 위기에 처한 농민단체들은 분노의 목소리를 토해내고 있는 가운데 농촌 들녘에는 위기의 한숨 소리가 짙게 깔렸다.

영양군 석보면의 농민 정영수(62)씨는"이젠 정말 쌀 농사도 끝난 것 같다"며 "요즘은 삼삼오오 모이기만 하면 도대체 무슨 농사를 지어야할지 서로 걱정하다 탄식만 주고 받는다"고 벼랑 끝에 내몰린 농민들의 심정을 대변했다.

박노욱 한농 경북도연합회장은 "쌀 생산비의 중·장기적인 감축방안을 비롯한 안정된 생산기반 마련을 위한 대안도 없이 수매가를 내린 것은 '농사 짓고 싶으면 짓고, 아니면 말라'는 식의 무책임한 발상"이라고 성토했다.

신택주 의성군농민회장은 "농민들은 이제 더이상 쫓길 곳도 포기할 것도 남아있지 않다"며 "800억원의 논농업직불제 증액도 정부의 쌀농업 포기를 위한 설득용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전 경주시농업경영인연합회장인 임천택(45)씨는 "가뜩이나 노동력 고령화로 농촌이 날로 황폐화되고 있는데 농촌활성화 정책은 커녕 수매가를 인하하는 것은 농사 포기와 이농을 부채질하는 졸속정책"이라고 비난했다.

안동농민회 박정민 사무국장도 "이번 쌀 수매가 인하방침은 농가 소득 감소분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없이 이뤄져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수매가 인하는 계속된 시중 쌀가격 하락에 기름을 붓는 격으로 농가의 직접적인 피해는 물론 심리적인 공황상태를 만들것이라는 주장했다.

오상용(52) 영양군농촌지도자회 회장은 "정부가 향후 어떤 후속조치를 내놓을지 몰라도 현재 제시한 논농업직불금 증액이 수매가 인하에 따른 손실보전 방안으로는 턱도 없다"며 "농민들에 대한 사전 이해 요청과 설명 절차도 없는 수매가 인하는 농사 포기 요구나 다름없다"고 했다.

농민들은 생명과 같은 쌀 문제를 경제논리로 풀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다.

청송군 안덕면 신상수(65)씨는 쌀 과잉생산을 빙자한 논농사 포기정책을 거두고 쌀소비 확대를 위한 방안 모색과 농민들의 안정적인 소득보장을 위한 식량정책 수립을 촉구했다.

이와함께 쌀 수급 균형 달성과 2004년 WTO 쌀 재협상 입지강화 목적으로 시행되는 쌀 생산조정제도 시작부터 농민들에게 외면을 당하고 있다.

안동시 풍천면 구담리 김상호(64)씨는 "논 4천평을 경작, 연간 800만원의 소득을 올리지만 휴경할 경우 보조금을 400만원밖에 받지 못해 당장 가계를 꾸릴 수 없다"며 쌀 생산조정제 포기 이유를 밝혔다.

안동시 임하면 임성호(60)씨도 "농민들은 휴경을 곧 소득원 상실로 인식, 노동력이 있는 이상 실비에 못미치는 보조금을 받고 농사를 포기하지는 않겠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농림부가 검토하고 있는 공공비축제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전농 경북도연맹 장재호(42) 부의장은 "추곡수매제를 폐지하고 공공비축제를 도입하는 방안에 원칙적으로 반대한다"며 "공공비축제가 도입되더라도 수매량·수매가 확보와 투명한 운용에 문제점이 노출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정부 수매가 인하안이 최종 확정될 경우 2003년 추곡수매가는 40kg 가마(1등급 기준)당 5만9천230원, 수매량은 532만6천섬으로 결정된다.

사회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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