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도 한국처럼 온 가족이 함께 사는 가정이 많다.
과거와 달리 20대 후반이 되어도 부모에게서 독립하지 않는 자녀가 점점 늘고 있기 때문이다.
쇼나 필립(Shona Philip·56)은 스코틀랜드의 에딘버러(Edinburgh)에 사는 여성이다.
판사인 남편과의 슬하에 아들만 세 명을 둔 평범한 주부. 그녀는 윌리엄 영국 왕세자가 다니고 있는 세인트 앤드류스 대학(University of St Andrews)에서 프랑스어와 독일어를 전공했다.
결혼 후엔 초등학교 하면서 공부하는 남편을 적극 뒷바라지하기도 했다.
아들 셋을 키우느라 여러모로 무척 힘이 들었을텐데도 쇼나는 무척 부지런히, 그러면서도 보람있게 자기 인생을 가꾸어 온 여성이다.
알뜰하게 가사를 돌보는 한편으로 틈틈이 남을 위해 봉사하는 것도 잊지 않고 있다.
지난 30여 년동안 일주일에 한번씩은 꼭 뇌성마비 지체장애인 보호시설인 체셔 홈(Cheshire Home)을 방문해왔다.
그곳의 장애인들을 돌보기도 하고 함께 쿠키와 케이크 등을 구우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요즘엔 한 달에 한 번, 특별한 날에 맞춰 체셔 홈을 방문해 그때그때 기념할만한 시기나 날짜에 맞는 빵이나 쿠키를 굽는다.
지난 해 크리스마스 때는 가사선생인 친구가 알려준 아이디어를 응용해 빈 캔에 과일케이크를 구워 파티를 벌였다.
오는 2월14일 발렌타인 데이에는 하트모양의 쿠키를 구울 생각이라고 귀띔해주었다.
이 모든 것은 장애인의 협동심과 사회성, 자족감을 키워주기 위한 프로그램의 일종이다.
어릴 적엔 나도 쇼나, 그리고 나와 동갑나이인 그녀의 둘째 아들 콜린과 함께 체셔 홈에 가서 나름대로 열심히 도와줬던 기억이 있다.
휠체어를 밀어주고 테이블에 냅킨과 접시, 포크 등을 놓고 게임을 하거나 가끔은 함께 앉아서 수다도 떨곤 했다.
요즘들어 쇼나가 일주일에 한 번씩 하고 있는 새로운 봉사는 학습능력이 조금 떨어지는 이웃 아이들을 도와주는 보조교사 역할. 학교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의 복습이나 숙제를 도와주는데 과목도 여러가지다.
프랑스어, 독일어, 영어, 역사 등이 있고 작년에는 라틴어도 가르쳤다고 한다.
쇼나는 프랑스어와 독일어는 자신있지만 라틴어의 경우 중고등학교 때 배운 이후로 다시 접하는 것은 처음이라 실력이 많이 녹슬었다면서 수줍게 웃었다.
"비록 나도 부족한 게 많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보람되고 기분 좋은 일인지 몰라요"라며 만족해 하는 쇼나.
그녀는 빠듯한 일상 속에서도 시간적인 여유가 있을 때는 친구들과 골프를 즐기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재충전하는 시간을 가진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건강하고 매사에 의욕이 있어야 남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쇼나의 아들들은 집을 떠나있는 시간이 집에 있는 시간보다 길다.
장남 제이미(27)는 런던에 사는 퓨처 딜러(future dealer)이다.
장래에 인기있거나 필요할 것으로 보이는 물건을 대량으로 사두고 가격이 오르면 파는 일이다.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둘째(24)는 나피에 대학(Napier University) 대학원에서 웹디자인을 공부하고 있다.
막내인 톰(20)은 헤드헌팅되어 작년 8월부터 에딘버러 대표팀의 프로 럭비선수로 뛰며 틈이 나는 대로 공부도 병행하고 있다.
어릴때부터 나의 친구였던 이들이 정원에서 공을 차며 노는 모습을 보면서 '셋중에 하나는 운동선수가 될거다'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맞아떨어진 셈이다.
영국은 운동시설이 비교적 잘 되어있는 편이다.
대학마다 체육관이 있고 심지어는 헬스장이 있는 곳도 있다.
학생은 물론 일반시민들도 연회비 약 60파운드(한화 약 11만원)만 내면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다.
중학교 다닐때부터 축구·배구·럭비·네트볼 등 적어도 한가지의 스포츠는 배우기 때문에 50대가 되어도 운동하는 것이 그다지 새삼스럽지는 않다.
이미 몸에 배어있기 때문이다.
쇼나도 남편과 시간나는 대로 애완견을 데리고 집 근처 공원으로 나가 조깅한다고 한다.
50대 중반의 나이라면 흔히들 사라져가는 젊음을 아쉬워하기도 하고 갱년기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경우도 많을 시기. 하지만 쇼나는 나이 때문에 불편하거나 안타까운 일은 없다고 명쾌하게 말했다.
"흐르는 시간을 붙잡을 수 없는데 후회해서 뭐하겠나. 그 어느 때보다도 지금 이 시간이 나에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생활하면 후회할 일도 없지요". 그녀는 또 이렇게 덧붙였다.
"나는 선행은 반드시 돌아온다고 믿어요. 나에게 있는 여유만큼 내가 남을 위해 봉사한다면 이 세상이 좀 더 밝아지지 않을까"라고.
적지않은 시간을 남을 위해 보내면서도 자신의 가정과 개인생활에도 충실한 쇼나를 보면서 나도 저렇게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유진(영국 뉴캐슬대학교 3년·영문학 전공) beautyon@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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