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론-공동연구, 우리도 할 수 있다

선진국의 과학기술 발전 과정에는 몇가지 특징이 있다.

그중에서도 여러분야간의 공동연구 형태가 예의없이 눈에 띈다.

즉 산·학·연간의 공고한 협력으로 기초과학이 산업기술로 자연스런 흐름을 띠게 된다.

대학은 풍부한 연구인력을 이용하여 원리나 기전 규명 등 기초를 다지는 연구를, 국공립 연구기관에서는 국가의 정책적 수요충당에 적합한 과제를 수행하며, 산업체에서는 상품개발에 직결되는 응용영역을 맡게 된다.

각 부문의 특징을 고려한 황금의 역할분담이 되는 셈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연구개발의 3각 구도는 학문의 성격이 다학제적으로, 산업기술은 융합형태로 급속히 변화되면서 또다른 옷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특히 과학기술의 오케스트라라고 할 수 있는 생명공학 영역에서는 기초·응용·산업기술의 전방위적 융합이 필수적이다.

국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다학제적 융합기술이 개발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떠한가.

우리나라 과학기술자들이 공동연구를 수행하는데 익숙하지 못하고 타인의 연구결과를 인정하는데 인색한 특징을 일컫는 자조적 표현이 있다.

"모래알갱이 집단"이라거나 "배고픈 것은 참을수 있어도 배아픈 것은 못 참는다"는 거북하고 냉소적인 문구이다.

우리는 정녕 공동연구를 할 수 없는 유전체질인가?

수개월 전부터 서울대에서는 "체질개선" 움직임이 일고 있다.

자존심과 1등주의에 녹아있던 서울대 교수 20여명이 거대한 프로젝트를 달성하기 위한 거보를 내디뎠다.

돼지의 장기를 인간에게 이식하여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환자를 구하자는 작전이다.

말은 간단하지만 넘고 건너야 할 산과 강은 험하고 멀기만 한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다.

그 길을 간단하게 살펴보자.

돼지장기의 그 해부학적 구조나 생리특성은 인간과 비슷하다.

그러나 인간에게 이식했을 때 불과 수분이내에 혈전이 생겨 혈관을 막기 때문에 조직의 급속한 괴사현상이 발생된다.

즉 초급성 면역거부 반응이라는 이종장기 특유의 부작용이 나타나 이식받은 환자의 생명을 잃게 된다.

돼지장기를 인간에게 성공적으로 이식하기 위해서는 위에서 언급한 초급성 면역거부현상과 급성거부현상을 극복하면 일시적 적응을(수일∼수십일간 생존) 하게 된다.

그 이후에도 세포매개성 거부현상과 만성 거부현상을 넘어서야 궁극적으로 안정된 장기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다.

이중 초급성과 급성면역 거부반응은 유전자를 적중시킨 형질전환 복제돼지를 생산하면 해결이 가능하다.

이 부분은 수의학, 축산학, 분자생물학, 면역학 전문가가 동원되면 해결될 것으로 믿고 있다.

다음 단계의 거부반응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식면역학, 생리학, 병리학, 조직학 등 전문가 집단의 공동참여가 필수요건이다.

여기에다 폐, 심장, 신장 등 이식대상 장기의 이식외과 전문가의 역할이 우선되어야 한다.

이처럼 이종장기 이식에는 수의·축산분야, 기초의학분야, 임상의학분야 등 10여개의 학문영역이 최선을 다하는 합동작전이 필요한 것이다.

서울대와 울산의대의 전문학자들이 자발적으로 연구그룹을 구성, 야심찬 항해를 시작했다.

이들은 돼지의 심장과 허파를 개에게 이식하여 이종장기의 이식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을 세밀히 분석하고 있다.

매 2주마다 반복되는 이 실험에는 20여명의 교수급 전문가와 30여명의 연구진이 힘을 모으고 있다.

이들의 다음 연구단계는 바분원숭이에게 돼지장기를 부착시키는 것이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장기이식만이 유일한 해결방안인 각종 난치병 환자에게 최단 시일내에 복음을 전하고자 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단 한푼의 연구비도 지원되지 않고 있다.

각자 주머니를 털어 실험경비에 충당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들의 눈은 어느 연구비 지원때보다도 빛나고 이들의 얼굴은 어떤 기업에서의 재정지원때보다도 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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