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미주 이민 100년의 숨결-LA흑인폭동의 교훈

1992년 4월 29일은 미 로스앤젤레스(LA) 지역 한인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의 날이었다.

한인 상가가 밀집해 있던 LA 사우스센터럴 지역이 이날 집단으로 난입한 흑인들로 인해 순식간에 무법천지가 돼 버렸기 때문이다.

미국 전역의 시선을 집중시킨 이 폭동으로 한인 1명을 포함한 58명이 목숨을 잃었고, 2천380여명이 부상했다. 경제적으로는 무려 2천800여개의 한인 업소가 피해를 봐 약 4억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4·29 LA 흑인폭동'으로 일컬어지는 이 사건은 미국 한인사회 전체에 감당하기 힘든 피해와 충격을 남겼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한인 이민사상 가장 중요한 전환기적 사건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폭동은 80년대 들어 LA 사우스센터럴 등 흑인 밀집지역 상권을 완전히 장악한 한인들이 흑인을 무시하거나 차별하는 경향이 많다고 여겨지며 흑인들로부터 강한 불만을 사면서부터 이미 예고되기 시작했다.

감정의 골이 깊어지면서 흑인들의 눈에 한인들은 흑인을 상대로 돈을 벌어들이는 데도 정작 흑인들과는 어울리려 하지 않고, 돈에만 혈안이 된 '악덕상인'으로 비치면서 결국 공격의 대상이 됐다.

폭동은 그러나 그동안 다소 폐쇄적인 자세를 고수해 왔던 미국내 전체 한인들이 타 소수민족과의 공존에 대해 고민하며 태도를 바꾸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BR>

또 사태 수습을 위해 마땅히 호소할 곳을 찾지 못해 더 큰 피해를 입은 한인들이 자신들 역시 미국내 소수민족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자각하게 만들었다.

이후 한인들은 권익 보호를 위해 그동안 무관심했던 정치력 신장 등 미 주류사회 진출을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한다.

폭동 이후 '4·29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한미연합회(KAC)의 찰스 김 사무국장은 '폭동은 미국내 한인들을 강하게 결속시키며 정체성을 재정립하게 만드는 한편 인종간 갈등의 벽을 허물고 함께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하는 등 많은 교훈을 남겼다'며 '그 이전까지 경제적인 안정에만 눈이 멀어 있던 한인 사회에 일종의 의식 혁명을 불러 일으켜 결과적으로는 한인들이 미국 사회에 더욱 밀착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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