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게토'타다 해지는 줄 모르고...

처마 끝 고드름이 커 갈 때면 아이들은 얼음지치기로 하루해가 짧았다.

꽁꽁 언 얼음. 하얀 선을 그리며 '사그르르~' 미끄러지던 속도감은 짜릿한 전율이었다.

턱턱 갈라진 손, 빨갛게 언 귀, 배고픈 줄도 모르게 그렇게 하루해를 보냈다.

영어 '스케이트'에서 나왔겠지만 '시게토'는 다른 뜻이다.

한자쯤 되는 나무판에 세로 토막을 대고, 복판에 철사를 붙인 앉은뱅이 스케이트다.

손에 쥐기 알맞은 둥근 나무에 대못을 박아 지치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철사의 굵기로 살림살이가 판가름되기도 했다.

잘 사는 아이들은 창틀에 쓰는 굵은 쇠를 달았다.

더 형편이 좋은 집 아이들은 대장간의 철판을 칼 같이 붙인 '칼시게토'로 뻐기기도 했다.

우리야 냇가 방천의 철사면 족했다.

둑돌을 얽어맨 철사를 돌로 두들겨 끊어 만든 것이다.

'약방집' 아이의 '칼시게토'보다 형과 머리 맞대고 만든 '철사시게토'가 훨씬 잘 나가고, 신났다.

경북 의성 한 저수지의 얼음지치기 풍경이다.

50년대 중반. 6·25의 전쟁통이 막 끝나고, 밥 짓는 연기도 귀했을 때다.

그래도 아이들의 웃음은 한없이 밝다.

박박 깎은 머리, 엉덩방아 찧는 형. 쨍한 얼음위로 아이들의 웃음이 울려퍼진다.

밀려나는 앉은뱅이 '시게토'도 환하게 웃는 듯하다.

'시게토'를 어깨에 메고 줄지어 논둑길을 가던 아이들의 재잘거림. 이제는 추억 속의 풍경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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