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년동안 지역 여론을 선도해온 지방 유력지들은 지금, '안팎'의 문제들에 직면해 있다. 밖으로는 서울 소재 거대 신문의 무차별적인 지방 시장 침투와 맞서야 하고 안으로는 지방 경제 붕괴에 따른 광고 시장 위축과 '정체성'이 모호한 지방지 난립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지난해말 문화관광부에 등록된 지방 일간지 69개사. 지난 2000년 63개사에서 2년 사이 10%가 증가했다. 지난 88년 10개사에 비하면 무려 7배나 증가한 수치다. 시.도별로는 경기가 11개사로 가장 많고 광주 10개사, 전북 7개사, 대구와 대전.경남 각 5개사, 부산.충북.제주가 각 4개사, 인천.울산.경북이 각 3개사, 강원.전남 지역이 2개사 씩이다. 또 소도시나 군 지역에서 발행되는 기타일간지로 등록된 신문도 437개에 달한다.
돈과 사람은 서울로 떠나고 서울 소재 신문의 왜곡된 지방 시장 장악력은 계속 높아가고 있지만 유독 지방지만은 증가하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 특히 신생 신문 대다수는 저임금과 만성적 적자에 시달리고 있지만 '독자 없는' 지방지의 창간은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가 없다.
지방지의 이러한 난립 원인은 우선 현행 정간법에서 찾을 수 있다. 단순한 기업이 아닌 사회의 주요한 공기인 신문의 창간을 '돈'만 있으면 누구나 가능하게 해 놓았다는 점이다. 동의대 문종대(신방과) 교수는 "신문 창간 조건이 윤전기 등 시설 규모만 까다롭게 규정할뿐 정작 신문 고유의 기능 수행에 대해서는 아무런 제재가 없다"며 "따라서 자본력을 갖춘 지역 기업들이 '영향력 행사'를 목적으로 신문을 창간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실제 지난 10여년간 창간된 지방신문의 대다수가 지역내 건설사나 유력 기업을 운영하는 사주에 의해 주도됐다. 일간지가 10개에 달하는 광주의 경우 지역내 ㄹ건설과 ㄱ백화점 등 웬만한 기업들은 모두 '신문'을 창간한 대표적 경우. 기자협회의 지방일간지 소유 구조 현황에 따르면 대구.경북을 포함한 지방지 중 대표 주주가 지역 기업이나 개인 재력가가 아닌 재단이나 단체 소유인 신문은 매일신문과 부산일보, 국제신문 등에 불과한 실정이다.
몇년전 청와대에서 있었던 헤프닝을 보면 지방지 난립의 이면을 볼 수 있다. 대통령 초청 언론사 대표 모임에 각 지방 건설사 사주들이 00신문이나 00일보 회장의 명함을 달고 줄줄이 참석 한 것. 이후로는 청와대 모임에서 언론사는 회장은 빼고 사장만 참석시키자는 우스개 소리가 돌았다는 후문이다. 물론 지방 신문을 소유한 건설사 사주들이 언론을 관급공사 바람막이나 사적인 영향력을 높이는데 사용, 물의를 일으킨 사례가 드물지 않다. 문 교수는 "특히 지방지 난립은 대구와 부산처럼 유력지가 없는 지역일수록 정도가 심하며 문제는 가뜩이나 어려운 지방 신문의 입지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즉 일부 신문의 경우 사주나 관계인들의 이해가 개입된 왜곡된 기사 등으로 '사이비 언론' 논란을 일으켜 지방지 전체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릴뿐 아니라 부실한 경영과 턱없는 저임금으로 기자들을 광고 시장으로 내몰아 '사이비 언론인'을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문화관광부에 따르면 94년 이후 8년간 광고 강요와 이권개입, 금품 갈취 등으로 문제가 돼 적발된 '사이비 언론인' 수는 465명에 이른다.
유력 지방지들이 겪는 또다른 고통중의 하나는 신문광고시장의 비정상적인 서울 집중현상이다. 지난해 상반기 국내 10대 광고주들이 지출한 광고액은 모두 4천700여억원. 그러나 전국 지방지에 배당된 광고 물량은 이중 채 2-3%가 되지 않는다. 매일신문이 대구.경북에서 중앙지에 맞서 여전히 구독률 1위를 고수하고 있고 지방신문이 전체 신문 시장의 18%대를 점하는 현실에 비쳐볼때, 광고 시장에서의 뒤틀린 '서울 편중' 현상이 더욱 심한 셈이다.
지방 유력지 관계자들은 "10대 광고주중 이동통신사를 중심으로 4개사는 거의 지방지 광고를 외면하고 있다"며 "모든 부문에서 지방이 차별 받듯이 광고시장에서도 지방 유력지는 영향력이나 실제 부수에 비해 형편없는 대접을 받고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특히 신문 발행 재원의 70% 이상이 광고에서 충당되고 IMF 이후 지방 소재 대기업 대부분이 도산한 탓에 지방 유력지가 입는 상대적 피해는 더욱 크다.
효가대 최경진(신방과) 교수는 "특정 거대 신문들이 증면과 판촉 경쟁으로 부수를 늘리고 이를 바탕으로 광고 수주의 영향력을 키워 온 것도 원인이지만 광고주들의 지방에 대한 몰이해도 광고의 서울 독식을 가져오는 큰 요인 중 하나"라고 밝혔다.
즉 모든 것이 서울에 몰려있는 탓에 대기업의 광고 활동조차 '서울의 눈높이'에서만 이루어진다는 지적이다. 비수도권에 인구의 55%가 살고 있지만 대기업 본사의 90% 이상이 수도권에 몰려있고 경제력의 수도권 집중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광고의 서울 소재 신문 독식은 결국 지방지의 생존을 가로막는 가장 큰 요인 되고있는 셈이다. 최 교수는 "광고주의 인식 전환을 위한 지방지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지방지의 공익성 등을 고려, 대기업 광고 배정의 정책적인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지방지의 최우선 기능인 지역 정보 전달에 있어서조차 지방 유력지들은 '서울 장벽'에 부딛쳐야 한다. 재원과 정책 결정권이 없는 '반쪽짜리' 지방자치 탓에 지방 관련 주요 뉴스의 상당 부분이 서울에서 쏟아지지만 정부 부처들의 경우 서울 소재 신문 위주의 정보 공급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총리실을 출입하는 지방지의 모 기자는 "대부분의 뉴스가 조간인 서울 소재 신문들을 위해 오후에 발표되며 긴박한 지역 이슈조차 제대로 취급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중앙공무원들의 사고가 '서울 위주'로만 고정돼 있다"고 말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지방민의 이해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정책들이 소홀히 보도되거나 지역의 목소리는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는 부작용을 빚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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