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성진칼럼-관료사회와 역대정권

제 5공화국 초기에 공무원윤리헌장이란 것이 만들어져 중요행사 때마다 이를 낭독게 한 일이 있었다.

'우리는 영광스러운 대한민국의 공무원이다·... 이 생명은 오직 나라를 위하여 있고 이 몸은 영원히 겨레 위해 봉사한다'와 같은 부분은 매우 시대착오적이라는 느낌도 없지 않지만, 부속 구호라고 할 수 있는 '공무원의 신조'는 '△국가에는 헌신과 충성을 △직무에는 창의와 책임을 △직장에선 경애와 신의를 △생활에는 청렴과 질서를'이라고 되어있어 그런대로 공무원의 바람직한 자세와 덕목을 축약하고 있었다고 볼 수가 있다.

비슷한 시기에 제정된 '국기에 대한 맹세'와 함께 당시 비정통적인 과정을 통하여 집권한 신군부가 국민적 긴장과 일체감을 고취시키고 나름대로의 애국충정을 과시하기 위하여 시행한 제도 중의 하나였다고 생각된다.

아마도 박정희 개발시대의 조국근대화 의지가 10월유신 이후 상당부분 퇴색하고 있던 무렵이기도 하므로 그와 같이 타율적인 방법으로라도 행정의 근간인 공무원들을 다잡을 필요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사실 국정운영의 책임자가 아무리 훌륭한 꿈과 정치철학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도 정책집행자인 공무원들의 협조를 받지 않고는 이를 실행에 옮길 수 없는 것이므로 공무원을 다스리고 움직인다는 것은 한 정권의 성패를 가르는 참으로 중요한 과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아다시피 제 5공화국 정권은 그 정통성에 약점이 있었으므로 출범 초기에 공무원을 숙정하고 대통령이 9시 뉴스의 머리에 나와 현장을 누비는 모습을 보여주는 등 군지휘관 출신 특유의 위세와 권위로 관료사회를 장악해갔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다수의 공무원들은 내심 그 숨막힐 듯이 경직된 공직사회의 분위기에 적잖은 저항감을 가졌던 것이 사실이지만 어떻든 그런 작위적인 권위창출과 부단한 점검, 확인 및 감시를 통하여 공무원들이 충실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어 간 셈이다.

제 6공화국 정부에 들어와서는 대통령직선제와 '보통사람들의 시대'라는 상징조작 덕분에 관료사회의 분위기가 많이 누그러지긴 했지만 공무원들을 다스리는 메커니즘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렇다면 군사문화의 잔재를 떨쳐버리고 더 이상 공무원윤리강령을 낭독하거나 공무원의 신조를 읊조릴 필요가 없게 된 이른바 문민정부나 국민의 정부아래에서의 공직사회는 어떠하였는가?

이론적으로만 본다면 당연히 억압적 분위기에서 벗어나 보다 자율적이고 민주적인 풍토속에서 공무원들이 그야말로 봉사의 보람을 느끼면서 국민을 위한 행정을 선도해나갔어야 옳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김영삼·김대중 두 대통령은 관료사회를 그러한 방향으로 이끌지 못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2세들의 부패연루혐의는 차치하고라도 정치(精緻)한 행정운영의 경험이 없는 민주투사 출신의 두 대통령은 혹은 기본적 소양의 부족으로, 혹은 언행불일치의 이중성으로 다수의 국민들에게 실망을 주면서 결국은 역대 어느 정권보다도 공무원들을 다스림에 있어서 실패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인기를 의식한 화려한 정치구호에 비하여 일상적인 점검 확인을 소홀히 하거나 인사정책 자체의 편중성으로 인하여 대다수 국민들은 물론 행정의 기간망인 관료들조차 충성심과 승복감이 현저히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기업이든 학교든 그 구성원을 단순히 힘이나 말로만 움직일 수는 없다.

항차 다양한 계층의 국민들로 구성된 나라를 움직임에 있어서랴. 국정운영의 최고책임자는 다소 힘이 들더라도 수범을 보이면서 부단한 자기절제와 헌신으로 국민들의 감동을 불러낼 수 있을 때, 공무원들을 진정으로 따르게하면서 마음으로 다스릴 수 있다는 평범한 교훈을 우리는 과거로부터 배워야 할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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