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개국공신이었던 태사 김선평의 후손(선안동 김씨)들과 고려 후기 김방경의 후손(후안동 김씨)들이 함께 살아오고 있는 안동 김씨의 본산 안동시 풍산읍 소산(素山)마을.
학가산 자락이 남으로 뻗어내려 그 지맥이 마을을 감싸안아 소산이라 했다.
마을 앞은 기름진 풍산평야가 펼쳐져 있고 멀찍이 들녘 한끝을 굽이치는 낙동강 줄기가 시원스레 뻗어 있어 영가지(永嘉誌·안동의 향토사서)에서도 살기좋은 영남의 으뜸 길지로 꼽고 있다.
영가지 방리(方里)편에는 마을 이름이 원래 금산촌이었으나 마을을 감싸고 있는 산이 소요산(素耀山)이라는 데서 소산으로 불렸다 한다.
깨끗하고 희고, 빛나는 산에 둘러싸인 마을이란 뜻.
또 마을에서는 소요산의 형상이 마치 소가 누워있는 모양같다하여 소산이라 한다고도 하고, 청음 김상헌이 낙향한 뒤 검소한 삶을 살라면서 이름이 화려한 금산촌을 소산으로 바꿨다는 말도 전해온다.
60여년 전만해도 이 마을엔 250여 호의 김선평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으나 지금은 선안동 김씨 후손이 20여호, 후안동 김씨가 20여호에 불과하고 120여호는 타성들이다.
정월 대보름맞이 걸립굿을 사흘간 계속해야 마을 전체를 돌아다닐 정도로 사람들로 북적였던 마을은 수백년이 흐른 지금 곳곳에서 희미하게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이 마을도 여느 전통마을과 마찬가지로 세월의 풍상을 견디지 못해 허물어지고 낡아가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하게 한다.
마을 중앙에는 허물어진 폐와가가 앙상한 뼈대를 드러내고 있으며 불에 타 검게 그을린 흉물스런 모습의 집들도 눈에 띈다.
안동 김씨 세도와 선비의 기풍을 간직해 온 고가옥들은 주인들이 대도시로 떠났는지 대문에 굵은 자물통이 채워진채 하릴없는 개들만이 낮선 객에게 컹컹 짖어댄다.
안동 김씨 28대손 김연동(78)옹은 "3년전만해도 20여명의 주민들로 구성된 마을굿패들이 정월 대보름에 걸립굿을 놀았다"며 "이젠 모두 떠나버려 설 명절에도 쓸쓸하다"고 말했다.
안동시내에서 살고 있는 김정호(43)씨는 "소산도 여느 마을과 마찬가지로 행정기관에서 보존대책을 마련하고 있다"며 "이젠 사람이 모두 떠난 자리에 덩그렇게 남아있는 고가옥들이라도 잘 보존해야 할 것"이라며 사라지는 전통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김태사 후손들이 이 곳에 들어와 터를 잡은 것은 조선초 비안(比安) 현감을 지낸 김혁에서 비롯된다.
김혁은 실제 이 마을 입향조인 김삼근(金三近)의 아버지로 지금의 안동 남선 정상리에서 살다 풍산읍 하리로, 다시 소산마을로 옮겨 정착했다.
이때부터 500여년간 안동 김씨 집성촌을 이루고 있으며 도승지와 대사간을 지낸 계행(係行), 세조의 국사였던 학조대사(學祖大師), 사헌부 감찰 영전(永銓) 등 숱한 학자와 정치인들이 났다.
이후 이 마을 안동 김씨들은 길안면 묵계리(寶白堂派)와 서울(壯洞派) 등지로 분파됐다.
특히 묵계리로 뻗어간 청백리 보백당(寶白堂) 김계행(金係行)의 청렴과 지조는 후대에 남아 지금까지도 그 정신과 유업을 따르고자 하는 유림들이 줄을 잇고 있다.
또한 조선 후기 명성을 떨쳤던 서울 장동파에는 문정공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과 형제가 함께 영의정을 지낸 그의 아들 수홍·수항 형제 등 15명의 정승과 35명의 판서, 6명의 대제학, 3명의 왕비가 배출되기도 했다.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고국산천 떠나고자 하랴마는/ 시절이 하 분분하니 올동말동 하여라'
조선 인조때 예조판서였던 문정공 김상헌이 병자호란때 임금의 굴욕적인 화친을 반대하다 청나라로 끌려가면서 읊었던 노래다.
공은 그 길로 중국 심양으로 가 모진 고초를 겪었으나 굴하지 않고 조선 선비의 기개를 보이자 그의 충절에 감동한 청조(淸朝)가 3년만에 볼모를 풀고 고국으로 돌려 보냈다.
이후 공은 관직에서 물러나 소산마을로 낙향해 칩거하면서도 굴욕적 외교에 대한 울분을 토했고 청나라를 멀리한다는 뜻에서 집의 현판을 청원루(淸遠樓·경북도 유형문화재 199호)라 지어 심경을 달랬다.
이 청원루는 서울 장동파의 종택이다.
또 이 마을 맨 안쪽 산자락에는 안동 김씨 대종가로 문중 번성의 싹을 틔운 정렬공 고택인 김영수선생의 종가인 양소당(養素堂·경북도 민속자료 25호)과 입향조 삼근이 벼슬길에서 물러나 낙향은거하며 지었다는 돈소당(敦素堂), 동야고택, 태고정, 정려문, 역동제사 등 많은 문화재들이 보존돼 있다.
마을 어귀에서 만난 남선근(72)옹은 "이 마을은 안동지역 대표적 문중인 안동 김씨들의 청렴과 지조가 밴 곳"이라며 "타성들이 대거 들어와 살면서 안동 김씨 마을의 전통을 이어가는데 노력하고 있지만 부족한게 많다"며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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