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훈훈해지는 미담기사에서 각종 단체의 새얼굴은 물론 큰 상을 받은 사람들을 소개하는 '사람들'면을 보면 아직은 우리사회가 그리 삭막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간접 경험하게 된다.
또한 독자들이 보내주는 화촉, 부음, 그리고 각종 모임·행사 등을 통해 바로 이웃의 소식도 알게 된다.
그런점에서 '사람들'면은 한지면에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를 집약해 보여주고 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우리 사회의 가치가 여전히 '대외과시'라는 확실한 지향성을 띠고 있다는 서글픈 확인을 매일 하게 만든다.
언론의 큰 기능중 하나가 홍보임을 감안하면 그리 문제가 될 건 없지만 그 정도가 지나친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부음을 보면 흔히 망자의 이름이 빠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망자는 누구의 부친, 혹은 모친 등의 부차적인 인물로 물러난다.
관행적인 부음소식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죽었는가' 가 아니라 '누구와 어떤 관계에 있는 사람이 죽었는가' 하는 것이다.
망자의 이름이 오면 그대로 싣고 있지만 그마저도 망자가 사회적으로 조금 알려졌다 싶을 때에 이름을 넣어오는 경우가 많다.
이런 관행이 굳어지다 보니 상가(喪家)에서도 망자의 이름을 아예 보내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인물사진과 함께 소개되는 동정기사는 단골인사들이 자주 등장한다.
특히 일부 인사는 매달 비슷한 내용의 기사를 게재해 줄것을 요청한다.
전화로 간곡히 부탁하거나 그도 안되면 사진과 자료를 들고 신문사를 오가는 일을 마다 않는다.
동정기사를 발굴해야 하는 것이 기자의 몫이기는 하지만 자신을 알리기 위한 목적에 더 무게가 쏠려있을 때는 답답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어떤 경우는 '윗분'을 모셔야 하는 실무자들이 더 안달일 때도 있다.
보는 것만으로 가슴 따뜻하게 느껴져야할 '온정'기사조차 씁쓸할 때가 있다.
물론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자신의 선행이 공개되는 것을 거북해 한다.
그러나 일부 관공서나 단체는 아예 드러내 놓고 자신들의 행사보도를 요청한다.
조그만 일이라도 언론에 생색내기로 보도를 하겠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돕는 그 자체보다 홍보에 목적이 있는 경우이다.
어려운 사람을 찾아가 성금을 전달하고 직접 찍어온 행사 사진은 가끔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잊은 게 아닌가 싶다.
복지시설이나 양로원 등 온정을 베푸는 대상이 되는 이들은 사진을 찍어 언론에 보도되는 것을 과연 동의한 것일까. 남을 돕는다는 것은 베푸는 그 자체의 기쁨으로 이미 자선자에게 큰 보답을 안겨줬음에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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