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 하는 오후

금호강은 하루에 한 장씩 자서전을 쓴다.

물결은 굵은 붓으로 써 내려간 깊고 푸른 문장. 자호천이 보현산 기슭을 끼고 돌면서 첫 단락을 쓴다.

...

문암천과 동화천, 신천을 합류하여 유유히 몇 단락의 본문을 써 내려간다.

팔달교를 지나면서 더욱 유장한 필체로 내리그어, 낙동강과 만나는 화원읍 구라리에 이르러 하루분의 집필을 완성한다.

고모령 너머 봄비 내리는 팔현 마을 부근, 오늘은 왜가리 몇 마리 천천히 걸음을 옮겨 디디며 물의 文脈을 읽고있다.

긴 부리로 어려운 구절에 밑줄을 그으며, 낯선 단어 위에 쿡, 쿡, 방점을 찍어가며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다.

김선굉 '금호강' 일부

금호강을 스스로 쓰고 있는 자서전의 문맥 속에 넣어 그려 나가는 발상이 재미있다.

평범한 지형들이 전체적 윤곽속에 잡혀 큰 하모니로 빛깔을 띠며 살아나고 있다.

핸들을 잡고 여행하는 이 시인에게는 가는 곳마다 즐거움이 될 것이다.

때로 그는 물의 문맥을 읽고 있는 왜가리 자신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권기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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