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12일 타계 백욱기 회장

지역 경제계의 상징적인 인물로 최익성 전 한국섬유개발원장과 함께 대구 섬유산업의 한 획을 그은 백욱기 전 동국무역(주) 회장의 타계소식에 지역 경제인들은 슬픔을 감추지 못하며 극락왕생을 기원하고 있다.

2천900명의 종업원, 매출 8천155억원을 기록하는 대기업의 창업주이면서도 늘 칼국수를 즐겨먹는 소박함, 그리고 실사구시를 중시한 성정과 외모까지 등소평을 닮아 '대구의 등소평'으로 불린 백 전 명예회장은 동국무역 그룹을 세계 제일의 폴리에스테르 수출회사로 만든 신화를 창조했던 주인공.

2세에게 경영권을 넘긴 동국무역이 IMF 파고를 넘지 못해 비록 워크아웃에 들어갔으나 최근 경영구조가 현저하게 개선되고 있어 희망적인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백욱기 동국무역 전 명예회장의 장례는 대구경북섬유산업협회 주관으로 '섬유인의 장'으로 치러진다.

장례위원장에 민병오 협회장이, 부위원장에는 박노화 대구경북 견직물조합 이사장과 김해수 대구경북염색조합 이사장이 각각 맡았다.

또 노희찬 대구상의 회장, 박성철 한국섬유산업연합회장, 이원호 한국화섬협회장, 이승주 국제염직 회장 등 20명이 고문을 맡았다.

협회는 박용관 (주)성안 회장을 장례 집행위원장으로 해 집행위원 65명 등 모두 88명으로 장례위원회를 꾸려 5일장(16일, 섬유인 장)을 치를 방침이다.

백욱기는 어떤 기업인?

1919년 경북 달성에서 4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고인은 16세에 염료행상을 하며 장삿길에 나섰다.

일제말 서문시장에서 포목점 '백윤기상회'(윤기는 백 전 명예회장의 아명)를 열어 섬유산업에 첫발을 내디뎠고, 해방후 목제직기 20대로 '평화직물공장'을 설립했으나 6.25로 문을 닫았다.

전쟁 이후 서문시장에서 '평화상회'란 포목도매상으로 재력을 쌓은 뒤 54년 북구 노원동에서 동국무역의 모태가 된 '아주섬유공장(동국직물)'을 세웠다.

65년 동국직물 서울무역부를 설립해 수출에 뛰어들었고 76년 동국방직으로 면방에도 진출했으며, 85년 동국합섬을 잇따라 설립해 원사에서 제직, 염색에 이르는 일괄 생산체제를 갖췄다.

그러나 90년대 초반 이후 섬유수출 호황기가 지나고 중국.대만.인도네시아 등 섬유 후발국들의 추격이 거세지면서 동국무역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특히 90년대 후반 원사값이 폭락하고 직물수출이 부진한 데다 대량생산체제가 한계에 부닥치면서 원사와 직물수출만으로는 덩치가 커진 그룹을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결국 지난 99년 2월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갔다.

그러나 백 전 명예회장은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뒤에도 지난해 8월초 간암으로 투병하기 직전까지 북구 노원동 옛 동국직물 사무실로 출근하며 동국무역의 정신적 지주로 자리매김했다.

고인은 불경기에도 동국무역 자체 공장보다 400여개 하청기업의 가동률을 먼저 생각하여 섬유인들의 존경을 받았으며, 사옥을 짓자는 사원들의 건의에 "그 돈으로 공장을 몇개나 더 지을지 검토해보라"고 지시할 정도로 섬유제조업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

79년 장학재단을 설립, 소년소녀가장 등에게 공부길을 열어주었고, 동국실업고등을 설립하였으며, 90년에는 헌암의료재단을 설립해서 구미중앙병원을 통해 공단 근로자와 가족들의 의료지원사업까지 폈다.

84년 국민훈장 석류장, 95년 금탑산업훈장을 수상했고, 대구상의 부회장, 대구섬유기술진흥원 이사장, 대구경북섬유산업협회장, 대구불교신도회장을 역임하면서 지역불교계 발전을 위해서도 크게 기여했다.

경제인 반응

대구.경북 섬유산업 역사의 산 증인이었던 백욱기 전 동국무역 명예회장의 타계소식이 알려지자 지역 경제인들은 슬픔과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워크아웃중인 동국무역이 양호한 자구계획 이행으로 경영실적이 크게 나아진 상황이어서 주변에서는 '생전에 완전한 경영정상화를 볼 수 있었더라면…'하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박용관 (주)성안 회장은 "지역업계의 대부였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이 크다"며 "단체장을 만류하고 그늘에서 희생하며 업계를 지원했고, 사리판단이 정확했던 분"이라고 말했다.

안도상 대한직물조합연합회장은 "섬유업계의 큰 어른이었지만 항상 전면에 나서지 않고 업계를 이끌었다"며 "대구경북섬유산업협회와 한국섬유개발연구원을 설립하고 위상을 제대로 세운 것도 그 분의 역할이 가장 컸다"고 말했다.

또 "50년대부터 지금까지 동국무역 그룹을 통해 지역 섬유산업을 선도해왔다"며 "지금도 동국무역에서 배출된 많은 사람들이 독립적으로 업체를 운영하며 업계를 주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병오 대구경북섬유산업협회장은 "섬유관련 기관.단체를 설립하기 위해 서울지역 업계와 경제단체, 국회를 찾아다니며 홀로 동분서주했다"며 "고(故) 최익성 회장과 함께 지역 섬유업계의 대부였다"고 말했다.

김태호 전 (주)삼아 회장은 "어려운 중소업체 사장들이 3개월짜리 어음을 들고 찾아가면 이자도 받지 않고 현금으로 곧바로 바꿔줄 만큼 정이 많았다"고 회고했고, 조복제 동성교역(주) 회장도 "업계를 위해 애를 많이 쓰신 분이어서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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