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춘수 칼럼-잡아떼기와 들끓기와

어느 생태학자의 말을 듣건대 근대문명과 문화는 습지대에서 싹을 트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다고 하고 있다.

학설이라는 것은 언제나 가설이니까 곧이 곧대로 이 말을 믿을 필요야 있겠는가 하지만 한번쯤 음미해 볼만은 하다고 생각한다.

습지대라 하면 서유럽 일대와 일본 등지를 가리킨다.

나는 도쿄에서 대학생활을 했기에 그쪽 기후를 잘 안다.

매우기(梅雨期)가 되면 며칠만 손질을 하지 않아도 구두에 파랗게 녹이 슨다.

그래서 거의 매일(때로는 하루 두세번) 대중목욕탕에 간다.

그래야 습기와 싸울 수 있다.

일본에 대중목욕탕이 많고 그 운용 방법이 발달해서 독특한 정서를 빚고있다는 것은 세계가 다 아는 바다.

가와바다 야스나리의 소설 '호수'는 봄날 대낮의 대중목욕탕에서 벌어지는 정경을 절묘하게 그려 보여주고 있다.

한 중년의 여인이 어깨에 물을 끼얹는 소리를 이쪽 남탕에서 한 사나이가 엿듣는다.

그 소리를 통하여 그 여인의 몸매와 얼굴모습과 나이까지를 탐색한다.

이쪽도 그쪽도 다 탕 안은 혼자만 이다.

이런 따위 탐미소설은 나는 처음 보았다.

습지대는 그런 정서를 만들어낸다.

문화도 그런 쪽으로 섬세하게 흘러갈는지 모른다.

그 생태학자가 그러나 강조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습지대는 도덕감각이 예민해진다는 것이다.

늘 몸을 깨끗이 유지해야 하니까 생리적으로 청결이 몸에 밴다고 한다.

사람들은 뭘 숨기지 못한다고 한다.

몸이 찝찝해서 견디지 못한다고 한다.

남이 보는 데서나 보지않는 데서나 제 자신을 속이지 못한다.

생리적으로 그렇게 된다고 한다.

문화가 성숙해지고 문명이 발달해지는 것은 이런 따위 도덕감각이 바탕이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일본인들의 그 옹졸함과 용렬함은 또한 어디서 오는 것일까?) 로마제국이 망한 것은 성도덕의 문란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고 말하는 역사학자가 있다.

위와 같은 사정으로 볼 때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는 습지대에 살고있지 않다.

그렇다고 심한 건조지대에 살고있지도 않다.

아주 어중간한 지대다.

그런데도 우리겨레의 가장 드러난 흠으로 거짓말 잘하는 것과 불결하다는 것을 들고있었다고 기억한다.

거짓말과 불결은 함수관계에 있다.

몸이 깨끗해야 마음도 깨끗해진다는 이치다.

우리말에 '잡아떼기'란 것이 있다.

이런 지독한 말은 다른 나라에는 없을 듯 하다.

무슨 일이 있다해도 속을 보여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역사적 지정학적 압력도 있었으리라. 남이 보지 않으면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다는 심보가 우리에게 만약 있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잖다면 지금도 날 마다 날마다 터져 나오는 감당하기에 겨운 이 태산 같은 비리는 다 어디서 나온다고 하는가?

우리말에 또 '들끓기'라는 것이 있다.

좋기도 하고 안 좋기도 한 말이다.

중국의 옛 기록에 나와있다.

고구려에 동맹이란 축제가 있었고 부여에 영고란 축제가 있었다고 한다.

동맹은 시월 상달에 곡식을 걷고 조상께 제사를 지내고 남녀노소 없이 주야 음주가무한 그런 행사였다고 한다.

영고는 섣달에 이와 비슷한 짓거리를 한 모양이다.

일종의 페스티벌이다.

우리말에 또 '신명난다' '신들린다' '신바람 난다' 등이 있다.

모두 신자가 붙는다.

신은 神이다.

즉 귀신이다.

사람의 흥이 아니다.

귀신이 가져다 준 흥이라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최근에도 있었다.

아주 대규모로 있었다.

월드컵 때의 붉은 악마들의 대도시의 거리거리를 메웠다.

세계가 감탄했다고 한다.

이런 따위 신명은 원래가 우리겨레의 것이다.

그러나 이런 따위 신명이 음주나 야외놀이에서는 엉뚱한 일을 저지른다.

엉망진창이 된다.

안하무인의 난장판이 벌어진다.

그야말로 들끓듯이 말이다.

상스럽기 이를 데 없다.

여기서 또한 뜻밖의 불상사가 발생하고 남에게 적잖은 피해를 입히는 일이 있다.

그것을 또한 개의 찮게 여기는 눈치들이다.

비문화적이요 이 또한 비도덕적이다.

공중도덕의 결여는 우리겨레 최대 최악의 흠이 랄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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