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망대-세상은 미쳐가는가?

어제 아침 대구 지하철의 중앙로 역사에서 일어난 대형참사로 전국이 하루 종일 경악에 휩싸였다. 외신들도 지하철 방화로 인한 이 어처구니없는 참사를 속속 보도하였으니 세계가 경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들은 우선 다수의 사람이 타고 있는 전동차에 명백한 이유 없이 '아무나 죽어라'하고 방화를 저지르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경악하였고, 또한 짧은 시간에 130여명으로 추정되는 사망자와 140여명에 이르는 부상자가 생겨날 정도로 지하철의 내부시설과 재난구호체계가 허술하였다는 사실에 경악하였다.

우리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지하철이 갑자기 위험지대로 떠오른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전동차가 역사에 도착할 때쯤 신원 미상의 남자가 갑자기 휘발유가 들어있는 플라스틱 통에 불을 붙였고, 전동차 전체가 순식간에 불이 번지면서 아비규환으로 변했다고 한다.

범인으로 지목된 사람은 뇌졸중, 뇌경색 등으로 반신불수가 되어 직장을 잃고 세상을 비관해오던 50대의 장애인이라고 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불특정 다수에게 무차별 테러를 가함으로써 불만을 해소하려는 지극히 부도덕한 인간행태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만연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미국이나 일본에서만 일어나는 먼 나라 일로 생각했던 일이 바로 우리의 코앞에서 벌어진 것이다. 아무튼 모방범죄가 일어날까봐 서울.부산의 지하철은 긴급경계에 들어가고 행정자치부는 전국 소방서에 특별경계 근무를 지시하는 등 전전긍긍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대형참사는 직접 관찰 가능한 것과는 다르게 많은 복합적 요인에 근거하여 일어난다. 대구 지하철 참사는 한 정신나간 사람의 방화로 인한 피해로는 그 규모가 너무나 크고 참혹했다. 우리가 정신병자의 존재보다도 더 불안해 마지않는 것은 현대 과학기술 문명의 상징인 지하철이 단순 방화로도 엄청난 인명피해를 가져올 수 있는 심각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반밀폐된 공간인 지하철이 문명의 이기이면서도 동시에 위험한 존재로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전동차의 내장재가 화재발생시 유독가스를 내뿜는 가연성 소재로 덮여있었고, 전동차 내에 스프링클러와 같은 방화장치가 갖춰지지 않아 조기진화를 못했으며, 화재가 발생하자 자동 정전되도록 안전장치가 작동하여 전동차의 문이 열리지 않음으로써 대부분의 승객들이 빠져나오지 못한 채 질식사하였다.

또한 반대편에서 온 전동차가 승객들을 위험에 방치하는 방만한 대응을 하였고, 화재시 자동정전으로 환기장치가 작동되지 않아 지하철 역사 내에 유독가스가 가득 찼으며, 암흑에 휩싸인 역사에서 승객들이 출구를 못 찾고 우왕좌왕하면서 인명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지하철의 통로가 연통 구실을 하면서 불이 커진 것도, 경찰과 소방대원들이 조잡한 진화장비로 인하여 사고가 난지 3시간이 지나서야 현장에 접근해 구조활동을 벌인 것도 인명피해가 커진 원인이었다. 이번 참사는 우리가 돌발사고라고 여기는 것이 사실은 산업사회의 정점에서 맞이하게 된, 체계적으로 생산된 위험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대구 지하철 참사는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사건으로 우리의 일상생활이 항상 위험에 놓여있다는 불안을 부추기고 있다. 만일 우리의 삶을 지탱해 오던 기초적인 신뢰에 금이 갈 경우 우리의 자아는 쉽게 해체되어 삶에 대한 통제력을 잃고 미쳐버릴지도 모른다.

따라서 언론과 시민단체들은 체계적으로 생산된 위험에 대한 사람들의 경각심을 일깨우는 한편,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의 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위험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우리 사회의 모든 조직과 제도들이 일상의 방만이나 교만과 관련하여 자신들이 스스로 행하는 자기검열을 자각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모두가 자제력을 잃고 상호 불신하는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노진철(경북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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