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김성래-데뷔 초라했던 '2세대 홈런왕'

"내게도 이런 순간이 있구나! 정말 꿈 같은 현실이다.

최우수 선수라니 정말 황송한 상이다".

1993년 10월7일 김성래는 프로 데뷔 10년 만에 최우수선수로 뽑히는 영광을 안았다.

두각을 나타낸 뒤 이어진 부상과 좌절에도 불구하고 불굴의 투지로 일궈낸 성과였다.

김성래의 10년 세월은 영광과 고난이 점철된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84년 프로에 데뷔한 김성래는 그 해 1할8푼6리의 타율에 홈런 1개, 3타점으로 초라하게 고개를 내밀었다.

후보 선수로 39경기에서 얻어낸 성적이었지만 기대 이하였다.

하지만 김성래는 85년 시즌 전 간염으로 고생했으나 주전으로 나서며 103경기에 출전, 2할8푼3리의 타율에 16홈런, 51타점을 기록, 스타 궤도에 진입했다.

86년 시즌 2루수 골든글러브를 첫 수상한 김성래는 87년 99경기에 출전, 3할3푼2리의 높은 타율에 홈런 22개를 날려 홈런왕 타이틀과 골든 글러브를 함께 수상하는 기쁨을 맛봤다.

이만수에 이은 삼성 2세대 홈런왕으로 팬들에게 각인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88년 9월6일 해태와의 전주경기에서 수비 중이던 김성한과 부딪쳐 무릎을 다쳐 무릎 후방 십자인대가 끊어지면서 선수생활의 위기가 닥쳤다.

정작 김성래는 부상 사실도 모른 채 2년을 버텼다.

해가 갈수록 성적이 떨어지자 90년 시즌이 끝난 뒤 미국에서 무릎 수술을 받고 돌아와 91년 30경기에 출전했으나 성적은 1할5푼7리의 생애 최저 타율에 홈런 3개, 5타점에 그쳤다.

삼성 구단은 3년간 연봉(3천만원)을 동결, 부상으로 신음하는 김성래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92년 김성래는 86경기에서 타율 2할9푼2리의 타율에 11 홈런, 50타점을 올려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는 93년 124경기에 출전, 5년 만에 3할대(3할) 타자로 복귀하며 28 홈런, 91타점으로 홈런왕과 타점왕 타이틀을 움켜쥐며 생애 최고의 영광을 누렸다.

김성래는 93시즌 초반부터 홈런에 대한 집중력을 발휘했다.

5월5일 해태전(광주)에서 1경기 2홈런을 터트린 것을 시작으로 6월15일 해태전(대구), 6월24일 LG전(대구), 9월4일 쌍방울전(전주)에서는 2연타석 홈런을 터트려 1경기 2홈런을 4차례 기록했다.

또 8월31일에는 LG와의 대구경기에서 1회 말 좌월 2점 홈런을 쏘아 개인 통산 100홈런을 달성한 8번째 주인공이 됐다.

삼성 선수로는 86년 9월2일 이만수, 1990년 5월31일 김용철에 이어 3번째였다.

그러나 김성래의 투혼도 또 한번 찾아온 병마 앞에서는 맥을 못썼다.

95년 장딴지 근육통으로 주전에서 탈락, 1, 2군을 오가다 96년 시즌이 끝나자 자유계약선수로 삼성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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