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민회관
○…희생자 유전자 감식을 위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혈액 채취 작업이 20일 밤 7시쯤 대강당에서 시작되자 실종자 가족 400여명이 한꺼번에 몰려 작업이 지장받을 정도의 혼잡이 빚어졌다.
일부 가족들은 "실종신고를 했는데 왜 혈액채취 서류를 안주느냐" "순번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등 거세게 항의했다.
그러나 대구시 김기옥 행정부시장이 혼자 잠시 이곳을 찾았을 뿐 수습대책본부 관련 공무원들은 아예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 때문에 실종자 가족들은 "원만한 사고수습을 강조하면서도 대구시가 혈액 채취가 어떻게 되든 관심도 없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질서 유지에는 실종자가족 대책위원들이 나섰다.
○…1995년의 상인동 지하철 가스 폭발사고 희생자 유가족회원들이 20일 오후 분향소를 찾아 유가족들을 위로했다.
정덕규 회장은 "상인동에서 자식을 잃은 사람"이라고 울먹이며 자신을 소개한 뒤 유가족들의 손을 붙잡고 "자식을 보내놓고 보니 실컷 울지 못한 것이 후회 되더라"며 "참지 말고 마음껏 울어라"고 위로했다.
유가족회는 대책본부에 성금 1천여만원을 전달했다.
○…20일 오후 합동분향소를 찾았던 정치인들은 냉소와 질타의 대상이 됐다.
이인제 자민련 총재 권한대행이 분향을 마친 뒤 위로의 말을 전하자 '강수정의 엄마'라고 밝힌 한 아주머니는 "영정도 없이 대형 화환만 준비됐다"며 "죽은 영혼들이 꽃을 못봐 환장한 줄 아는 모양"이라고 고함을 쳤다.
이명박 서울시장이 조문할 때는 경희대 2학년에 다니다 군 입대를 위해 대구의 집으로 내려온 장남 김기현(21)씨를 잃었다는 서모(50.여)씨가 "다음 세상에서는 아들이 다시는 한국에 태어나지 말라고 기도하고 있다"며 울부짖었다.
서씨는 "그날 오전 10시쯤 아들이 휴대전화로 '뜨거워 죽겠다' '숨을 못 쉬겠다'고 전해온 뒤 소식이 끊겼다"고 했다.
○…20일 낮 12시30분쯤엔 질녀 장모(20)양을 잃었다는 삼촌 장수억(50)씨가 "분향소가 시끄러워 영령들이 조용하게 쉴 수가 없다"며 현장에 있던 영정 21개를 들고 대구시청으로 가는 일이 발생했다.
장씨는 2층 시장실 앞에서 시장 면담을 요구하면서 10여분간 농성하다 분향소로 돌아와 시위를 계속했다.
장씨는 분향소 일을 돕는 봉사자들과도 실랑이를 벌이다 위로하는 이들과 함께 울먹이기도 했다.
◇입원 병원
○…부상자들은 대부분 들이마신 독가스 때문에 기관지를 다쳐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경상자들은 목 통증, 호흡곤란, 어지럼증을 호소하고, 중환자들은 폐나 심장까지 다쳐 산소마스크에 의존하고 있다.
영남대병원 간호사는 환자 3분의 2의 폐에 독가스가 해를 끼친 것 같다고 했다.
○…부상자들은 "입원실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불평했다.
영남대병원 권춘섭(45.대구 상인동)씨는 "응급실에 있다가 19일 저녁에야 입원실을 받을 수 있었다"며 무신경한 당국을 원망했다.
○…방화 참사 용의자 김모(56)씨와 함께 경북대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던 박병준(36.대구 대명동)씨가 20일 낮 12시50분쯤 끝내 사망했다.
대구 교동시장에서 조명기기상을 하던 박씨는 지난해 10월 결혼해 두 달된 딸을 둔 것으로 밝혀져 주위의 안타까움을 샀었다.
그의 아내는 출산으로 부기가 있으면서도 현장에서 오열, 안타까움을 더했다.
◇당국의 대처
○…조해녕 대구시장은 20일 오후 유족 대표들과의 장례 협의에서 장례비(현재 600만원)를 100만원씩 더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조 시장은 "보상 문제는 장례가 끝난 후 협의해도 되는 만큼 우선 장례부터 치러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유족 대표들은 "시청의 일부 간부들이 약속을 뒤집는 등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사례가 적지않다"며 못미더워 했다.
○…대구.경북지방 병무청은 특별재난지역인 중앙로역 일대 징병검사 대상자, 현역병, 공익근무 입영대상자 등의 검사.입영 날짜를 연기한다고 밝혔다.
피해자 가족은 전화.인터넷을 통해 신청할 경우 60일까지 이를 연기할 수 있다는 것. 053)250-2321.
○…월배 차량기지로 옮겨진 사고 전동차에 온 국민의 관심이 쏠리고 있으나 지하철공사 간부는 취재기자들의 사무실 사용 편의마저 거부해 말썽을 빚었다.
20일 오후 현장을 취재하던 일부 기자들이 기사를 작성.전송할 공간을 못찾아 사업소 상황실에서 일하다 월배차량기지 소병만 사업소장으로부터 혼이 났다.
소 소장은 "함부로 남의 사무실에 들어오지 말라"고 고함을 쳤다는 것.
○…대구시청.경북도청 등이 입원 중인 해당 시민.군민 등을 개별적으로 지원.위문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그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얘기도 돌고 있다.
영남대병원 고명순(49.문경)씨의 딸 이미영(27)씨는 "경북도청.문경시청 공무원들이 찾아와 위로하고 성금도 줬다"고 전했다.
경북대병원 권미영(24.여.안동)씨에겐 안동의 도청 공무원이 다녀가고 모 국회의원도 화환을 보냈다.
파티마병원 환자 10여명은 20일 오전 대구시장으로부터 30만원의 위로금을 받았다.
또 구세군은 환자 전원에게 타월을 나눠주며 위로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유일하게 위로금을 못받았다는 김매자(53.구미)씨는 "대구시청은 물론 경북도청으로부터도 위문인사 한번 받지 못했다"며 불쾌해 했다.
또 영남대병원 박창근(65.대구 대명동)씨의 딸(29)은 "남구청.북구청 공무원들이 몇번 찾아와 위로금을 전한 적은 있지만 시청에서 나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했다.
권춘섭(45.대구 상인동)씨도 "국회의원과 구청장이 찾아왔지만 시청에선 아무도 모습조차 안보였다"고 했다.
박성욱(18.경산)군은 "동사무소 직원들이 음료수를 들고 방문했을 뿐"이라고 했다.
영남대병원의 한 환자는 특히 "대구지하철공사 관계자가 찾아와 위로 한번 한 일이 없다"며 "몸 아픈 것보다 사태를 제대로 수습 못하는 공사측이 더 밉다"고 했다.
◇대학가 큰 피해
○…이번 참사에서는 지역 대학생들의 희생이 컸던 것으로 나타났다.
대구대 경우 국어교육과 정승희(21)씨 등 여대생 5명의 연락이 두절돼 있다.
정씨의 같은 과 친구인 최혜경(21)씨는 친구들을 배웅하러 중앙로역으로 나갔다가 소식이 없으며, 회화과 정남진(22)씨는 중앙로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연락이 끊겼다는 것.
특히 대구대 경상대 이희정(20)씨는 사고 당일 오전 9시55분쯤 어머니 박경옥(48.포항)씨에게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어 긴박한 상황을 전한 뒤 소식이 없어 안타깝게 했다.
어머니는 "유리창을 깨고 탈출하라고 했지만 '엄마 도저히 못 참겠다'는 말을 끝으로 전화가 끊겼다"고 했다.
○…대구가톨릭대에서는 테니스 선수인 체육교육과 김종석(21) 서동민(21)씨, 입학 예정자 김택수(18) 방민휘(18)군 등 4명이 실종됐다.
이들은 다음달 열리는 대학연맹전을 준비하기 위해 합숙 훈련장인 대구교대로 가던 중이었다.
같은 과 송두수(21)씨는 "훈련 시간보다 30분 앞서 대구교대에 도착해 기다렸으나 이들 4명은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며 흐느꼈다.
○…사고 당일이 졸업식이었던 계명대에서도 강정숙(26)씨, 작곡과 황태영(22)씨, 성악과 장정경(23)씨, 미술학과 김향진(23)씨 등이 끝내 졸업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영남대에서는 생활과학부 강수정(21)씨, 토목공학과 졸업생 허현(27)씨가 숨진 것으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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