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밤 10시쯤 매일신문사 3층 편집국. 지하철 참사 취재를 위해 나흘째 밤샘 취재를 하느라 기자들이 파김치가 돼 있는 이곳에 갑작스레 고성이 울렸다.
흥분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지하철 참사 때 아들이 실종됐다는 허우석(49)씨였다.
그는 지난 19일자 본지 1면에 보도됐던 참사 직전 전동차 객실 내부 사진 속 출입구 옆에 허리를 숙인 채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남자가 자신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며 찾아온 적 있던 사람(본지 20일자 보도)이었다.
허씨가 21일 밤 다시 신문사를 찾은 것은 답답함을 호소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탈출에 성공해 병원에 입원 중인 환자가 자신이 사진 속의 그 남자라고 증언했다는 기사가 21일자 매일신문에 또 실렸기 때문.
허씨는 새 증언자의 말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했다.
30여분 이상 사진을 다시 짚어가며 그 속의 남자가 자신의 아들임에 틀림 없다고 했다.
"정말 내 아들이 맞다니까요. 왜 믿어주지 않습니까? 사진 속 얼굴을 보세요. 머리가 긴 것이 아들과 같지 않습니까? 생존자의 머리는 짧게 나타나 있지요. 내 아들의 동료들이 오늘 신문을 보고 병원으로 그 사람을 찾아가 머리 길이를 확인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니까 내 아들이 맞다는 겁니다". 허씨의 목소리는 갈수록 높아졌다.
일하다 말고 몇몇 기자들이 달라붙어 사정을 차근차근 설명해도 먹혀들지 않았다.
답답해진 한 취재기자가 탈출 생존자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머리 모양에 대해 물어본 것. 그러자 그 생존자는 자신의 머리칼이 곱슬이어서 감으면 길어지고 그렇잖으면 짧아보인다고 말해 줬다.
기자에겐 어느 정도 의문이 풀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허씨는 포기하지 않는다고 했다.
"내일 병원에 가 생존자를 만나겠다"는 말을 남기고야 자리를 떴다.
아들을 떠나보낼 수 없는 허씨. 그의 이름은 아버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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