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관리 운영 주민참여 바람직

울진원전 핵폐기물 임시 저장고 빗물 유입으로 원전의 안전성 문제가 또 다시 도마위에 오르고 있다.

핵은 경제성과 위험성을 동시에 지닌 양날의 칼 같은 에너지원이기에 원전에 대한 불안감은 늘 주민들 가슴속에 도사리고 있는 것.

특히 이번 사건은 핵폐기물 저장고를 관리·감독하는 한국수력원자력(주)과 과학기술부 등의 지나친 자신감에서 오는 안전불감증, 그에따른 사후 수습 미흡 등 핵 관리의 한계성을 그대로 드러내 문제의 심각성을 더해 주고 있다.

▶방사능 오염 있나 없나

원전측은 방사능 오염 가능성은 '전혀 없다'라고 단정적으로 말한다.

저장고 안에 방사선이 있긴 하지만 이는 직진운동만 하기 때문에 미세한 굽은 크랙(틈)을 통과하기 어렵고 또 유입된 빗물도 1.5ℓ에 불과한데다 방사성 물질들도 드럼속에 밀봉돼 있기 때문에 외부로의 유출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당시 저장고 안과 바깥 복도의 방사선량이 각각 0.00001과 0.011 밀리그레이 (mGy/h)로 법적 허용치 0.01 밀리그레이 보다 훨씬 낮았고 오염도 없었다고 주장한다.

또 액체 폐기물은 특수한 여과처리설비를 통과시켜 방사능이 없는 물로 만들거나 증발시켜 순수한 물로 만든 후 방사능 종류 및 농도 등을 측정, 규정 이하의 허용값임을 확인하고 나서 바다로 방출하게 되는데 이번 빗물도 이러한 처리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는게 원전측의 주장이다.

그러나 녹색연합 등 환경단체들과 주민들은 이 수치는 원전측이 자체 측정한 것인 만큼 신뢰도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빗물 유입량도 처음엔 누수 자체를 부인하다 뒤늦게 시인했고 이를 관리하는 용역업체인 현대원자력측의 근무일지에도 기록되지 않았던 점 등을 지적,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추후 안전기술원과 환경단체 등이 참여하는 조사단의 정확한 측정과 진상조사가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허술한 관리 체계

원전측은 저장고의 빗물 유입은 보고 내지는 공개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또 빗물 유입은 건물의 안전성이나 방사성 드럼의 건전성을 우려할 사안이 아니라고 잘라 말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원전측의 안전불감증과 감독기관의 허술한 관리감독이 낳은 사고라고 지적하고 있다.

근무일지 누락에서 엿볼 수 있듯이 애초부터 축소·은폐할 의도였던게 아닌가하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데다 과기부 주재원들도 언론에 보도되기까지 이러한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고 보수까지도 수개월이 걸린 만큼 안전체계상에 적잖은 허점을 드러냈다는 평가다.

이런 안전관리 체계와 대처능력으로는 이보다 더 무서운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즉각적인 감지와 조치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불안감을 낳게 하고 있는 것.

실제로 지난 1995년 6월 발전소에서 나온 폐기물을 저장고로 옮기는 도중 발생한 고리원전 핵 누설의 경우 방사능 폐수가 흘러 부지가 심각하게 오염됐는데도 원전측이 이를 숨겨오다 1개월이 지난 뒤 우연히 지나가던 주재원의 휴대 계측기에 측정되면서 세상에 알려진 일이 있었다.

▶관리-감독 이원화 문제

관리-감독체계도 문제다.

건설과 발전은 산자부가, 이에 대한 감독과 안전은 과기부가 맡는, 즉 관리-감독이 이원화 돼 있다.

또 주재원 배치도 산자부는 아예 없고 과기부만이 각 지역에 겨우 5명씩 상주시키는게 고작이다.

때문에 이들 규제기관의 극소수 인원이 건설·발전·폐기물 등의 업무를 맡고 있는 거대 공룡인 한수원을 상대하기가 벅차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따라서 한수원의 지나친 자신감과 늑장대응 방지를 위해선 공정거래위원회처럼 독립된 원전안전기구 마련이 필요하다.

▶핵폐기물 저장량

우리나라는 18기의 원전을 보유한 원전선진국임을 자처하고 있지만 영구처분장을 갖고 있지 못한 점에선 여전히 그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한수원에 따르면 4개 원전지역의 중·저준위 폐기물 총 저장능력은 9만9천900드럼(드럼당 200ℓ). 2003년 2월 현재 6만200여개가 채워져 60% 이상의 저장률을 보이고 있다.

저장용량 1만7천400개인 울진원전의 경우 1만2천여개가 채워져 2008년이면 한계에 이르고 월성이 2009년, 고리와 영광이 2014년이면 포화상태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공개원칙 신뢰구축

전문가들은 원전 정책의 가장 중요한 점은 안전성 확보와 그에 따른 국민 신뢰 구축에 있다고 단언한다.

최근 정부가 울진 등 4곳의 영구처분장 후보지를 발표해 놓고 해당 지역 주민들로부터 거센 저항을 받고 있는 것도 국민적 합의없는 정부 일방의 핵정책과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불신에서부터 비롯된 것.

따라서 사고든 고장이든 원전의 비정상적인 상태는 즉시 공개, 정확하고 신속하게 수습하는 관리운영의 투명성이 선행돼야 하고 또 이러한 관리 운영에 주민들이 직접 참여, 관리·감독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울진·황이주기자 ijhwang@imaeil.com

용어설명-Gy(그레이):방사선은 방사선 자체 양의 정도를 나타내는 물리량(방사능)과 방사선이 물질을 통과하면서 물질에 부여하는 효과의 정도를 나타내는 물리량(흡수선량, 등가선량)으로 나누어진다.

흡수선량은 방사선에너지가 물질에 어느 정도 흡수되었는가를 나타내는 양으로 그 단위는 그레이(Gy)를 사용한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