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신길(51·대구 방천동)씨는 지하철과의 좋은 인연을 악연으로 끝맺고 말았다.
특히 중앙로역은 그랬다.
그가 중앙로역을 자주 드나들던 것은 6년 전. 일대 구간을 시공하던 ㅎ산업 직원이던 엄씨의 임무는 공사에 사용되는 자재를 점검하고 토목 작업을 감독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엄씨는 나흘 전 바로 그 현장에서 딸을 목놓아 불러야 했었다.
딸 지연(22)씨와의 연락이 지하철 참사 발생 직후부터 끊어졌던 것.
21일 수성구 욱수동 노인치매 전문병원 옆 장례식장에 있던 엄씨는 말을 잇지 못했다.
붉은 눈빛은 지난 18일의 충격이 얼마나 컸던가를 말해주고 있었다.
그런 아버지 앞에 액자 속 모습으로 앉아 있는 딸의 미소는 검은 리본과 조화에 어울리는 것이 아니었다.
사고 당일 오전 10시30분쯤 수십번의 호출에도 휴대전화가 묵묵부답일 때 텔레비전은 한창 지하철 참사 속보를 전하고 있었다.
설마 하면서도 중앙로역으로 내달렸다.
오후 2시30분쯤 딸은 죽음의 고비에서 구급차로 옮겨지고 있었지만 아버지는 아무 것도 모른 채 여전히 현장을 헤매느라 정신을 놓고 있었다.
모든 노력이 헛되고도 헛됐다.
초등학교 때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학교까지 태워 다녔던 딸은 하직 인사도 못한 채 저승길을 가고 있었다.
"지하철 공사를 지켜보던 자리에서 딸의 주검을 찾아 헤매야 하다니요…". 아버지는 딸을 22일 화장해 영결했다.
전창훈기자 apolonj@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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