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하철 방화 참사 때 대부분의 희생자를 낸 대곡 방향 1080호 전동차 기관사는 한 구간 앞 역인 대구역에서 이미 화재 발생 사실을 통보 받았으며 승객들이 다 대피한 줄 알고 운전용 키를 빼 감으로써 큰 피해를 낸 것으로 확인됐다.
기관사 최상열(39)씨는 21일 매일신문 취재기자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중앙로역에서 725m(주행시간 1분15초) 떨어진 대구역에 정차해 있던 중 종합사령실로부터 "중앙로역에서 화재가 났다"는 무선 연락을 받았다고 인정했다.
이때 상황과 관련해 한 독자는 "1080호 전동차가 대구역에서 출발하기 앞서 주춤거렸으며 기계고장으로 출발이 지연되니 내릴 사람은 내리라는 방송을 따랐다가 목숨을 구한 사람도 있다"고 제보해 왔다.
경찰이 지난 20일 공개한 통신 녹취록에서도 이 전동차가 대구역을 출발하기 전에 종합사령실이 화재 사실을 통보한 기록이 확인됐다.
그러나 사령실은 중앙로역으로의 출발을 금지시키지 않고 "조심해 들어가라"고만 해 지휘가 부실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기관사 최씨는 또 중앙로역 40여m 앞에서는 연기까지 발견했으면서도 정차·후진 등 조치는 커녕 중앙로역 무정차 통과 결정조차 않고 정거해 버렸으며, 승객을 승하차시킨 뒤 다음 역으로 출발하려 시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중앙로역에서 최 기관사는 사령실과의 교신에 매달리고 있다가 단전 상황을 맞았고, 상황이 심각해지자 수동 조작으로 출입문을 모두 열어 일부 승객들과 함께 계단 입구까지 탈출하기도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운전실로 되돌아 가 전동차 재운행을 시도했으며 그것이 여의찮자 마스터 키를 뽑아 탈출하는 바람에 문이 닫혀, 그때까지 전동차 안에 있던 승객들이 큰 희생을 치렀다.
최씨는 인터뷰에서 "마스터 키를 뽑으면 문이 자동으로 닫힌다는 것은 알았지만 승객들이 모두 빠져 나갔을 것으로 보고 키를 뽑았으나 판단 착오였다"고 시인했다.
또 최씨는 "중앙로역 도착 전에 연기를 봤으나 승객을 대피시키거나 전동차를 세워야 할 만큼 큰 불인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김병구기자 k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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