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 달라는 절규와 검게 그을린 벽에 난 당신의 손톱자국에 가슴이 찢어집니다".
대구지하철 참사로 희생된 이들의 원혼을 달래는 '시민 애도의 날'이던 23일. 대구는 깊은 슬픔과 거대한 분노의 물결 속에 잠겼다. 하늘도 이들의 죽음을 슬퍼해 잿빛 구름을 드리우고 눈물같은 비를 뿌렸다.
참사 현장에는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시민 행렬이 아침 일찍부터 꼬리를 물었다. 그 행렬의 길이는 오후 들어 200여m나 됐다. 모두 내 일처럼 슬퍼하면서도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하나 둘 쌓이기 시작한 국화꽃은 어느새 작은 산이 됐고 거리에서는 온통 추모의 깃발이 물결을 이뤘다.
오전 10시. 꼭 닷새 전 참사가 시작되던 바로 그 시각, 대구 전역에 애도의 사이렌이 1분 동안 울려 퍼졌다. 달리던 자동차들은 모두 경적을 울렸고 시민들은 너나 없이 고개를 숙여 고인들의 명복을 빌었다. 검게 변한 중앙로 역사처럼 이웃 잃은 마음들도 숯검댕이가 됐다. 충혈된 눈가에는 어느새 짙은 이슬이 맺혀 있었다.
사찰 60여개과 성당 10여개, 교회 500여 개 등도 함께 종을 울렸다. 달구벌대종은 그 깊은 울음을 토해냈고, 공공장소에는 조기가 게양됐다. 검게 그을린 중앙로 역사 벽면은 온통 희생자 추모 글로 도배됐다. 곳곳에서는 실종자들을 찾는 사진과 애끊는 사연들이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아 맸다.
"스스로를 태워 세상을 밝히는 촛불처럼 희생자들의 죽음이 결코 헛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김정길(23.대구 산격동)씨는 목소리를 떨고 있었다. 지하 참사 현장의 장미령(33.대구 신천동)씨는 "화재 때 1천℃가 넘었다던데 얼마나 고통스러웠겠느냐"고 했다.
어머니를 따라 나섰던 한 초교생은 시커멓게 타버린 지하철 역사를 보고 "지하철 타기가 너무 무섭다"고 울먹였다. 졸업식에 참석하려다 참사를 당한 김향진(23.계명대 공예학과)씨의 친구들은 "오늘이 향진이의 23번째 생일"이라며 참변 현장에서 '눈물의 생일파티'를 열었다. 이정진(30.대구 신암동)씨는 "사고 현장에서 그때의 참혹함을 생각하니 내 가슴까지 막혀 오는 것 같다"고 했다.
합동분향소에도 희생자의 명복을 빌고 남은 가족들과 아픔을 함께 하려는 발길이 밤늦도록 이어졌다. 남녀노소, 내외국인의 구별이 없었다. 서울.경기.부산 등 멀리서 온 조문객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았다. 고사리 손들도 함께 했고 거동 불편한 할머니.할아버지도 조문 행렬에 가담했다. 인도네시아.우즈베키스탄.필리핀 노동자 40여명도 애도 대열에 합류했다.
엄마와 함께 분향소를 찾은 이정호(10.대구 용산동)군은 "이번 참사로 또래 친구들이 많이 죽었다"고 슬퍼했고, 배정도(83.달성 다사면) 할머니는 "희생자들의 애달픈 사연때문에 밤잠을 설쳤다"며 영정 앞에서 통곡했다. 스리랑카인 세나(32.왜관)씨는 "내가 사는 한국에서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유족들과 슬픔을 나누기 위해 새벽부터 서둘러 대구로 향했다는 윤찬주(40.광주 방림동)씨는 "먼길을 떠난 이들과 남은 이들의 슬픔이 다르지 않은데 그깟 사는 곳이 다르다고 어찌 차이가 있겠느냐"고 했다. 시민회관 1층 사고 수습대책본부에는 성금을 내려는 사람들이 줄을 이어 이날 하루에만 2천여명이 성금을 접수했다. 사고 대책본부는 합동분향소를 찾은 조문객이 23일 오후까지 3만6천여명에 달한다고 집계했다.
매일신문사, 대구시, 유가족 대책위 등의 홈페이지 추모게시판에도 희생자들을 위문하는 글들이 쇄도했다. 김시민씨는 "이들을 위해 추모비를 세워야 한다"고 했고, 김동환씨는 "지난 10여년간 악재만 쌓여 온 대구의 암울한 미래를 예고하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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