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대중 대통령 오늘 퇴임

김대중 대통령은 24일 오후 5시 청와대를 나와 동교동 사저로 퇴근, 5년간의 청와대 생활을 마감하고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간다.

김 대통령은 이날 오전 김석수 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들과 동작동 국립묘지를 찾아 참배한 뒤 마지막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오찬을 함께 했다.

김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지난 5년동안 우리 국민의 노고와 인내, 성원과 협력에 힘입어 여기까지 올 수 있게 된 것을 모든 국민께 감사드린다』면서 『이처럼 위대한 국민을 모시고 봉사할 수 있었던 것을 영광과 보람으로 생각하며 앞으로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나라와 민족의 평화와 번영을 기원하며 살겠다』고 소회를 피력했다.

김 대통령은 오후에는 첸지첸(錢其琛) 중국 부총리 접견을 끝으로 대통령으로서의 모든 공식일정을 마감했다.

퇴임후 김 대통령의 행보에 대해서는 특별한 얘기가 없다. 당분간 휴식을 취한 뒤 동교동의 「김대중 도서관(구 아태재단)」에 마련될 사무실에 출근해 한반도 평화와 통일문제 연구에 전념할 계획이며 현실 정치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는게 청와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김 대통령은 퇴임후 일정기간동안 휴식을 취한 뒤 기회가 닿는대로 해외로 나가 한반도와 세계 평화를 위한 강연활동에 적극 나설 예정이다. 이와 관련 이미 해외의 여러 대학이나 연구기관으로부터 강연 및 면담요청이 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김 대통령은 당분간 이러한 요청에 응하지 않고 국내에 머물면서 퇴임후 활동 구상에 몰두할 것이란게 청와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24일 『지난 5년동안 결려하고 편달해주신 국민 여러분의 태산같은 은혜에 머리숙여 감사드린다』며 『우리 국민에 대한 신뢰와 희망을 가지고 떠날 수 있게 되어 더할 나위없이 기쁘다』고 말했다.

김 대통령은 이날 「위대한 국민에의 헌사」라는 제목의 퇴임인사를 발표, 『부족하고 아쉬운 점도 많았고 후회스러운 점도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국민 여러분과 저의 정부는 지난 5년동안 최선의 노력을 다하여 국운융성의 큰 기틀을 잡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대통령은 『북한과 평화적으로 공존하고 평화적으로 교류.협력하다가 서로 안심할 수 있을 때에 평화적으로 통일하는 길로 가야한다』며 『이것만이 민족의 비극을 종식시키고 통일조국을 실현하는 최선의 길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대통령은 그러나 『북한 핵은 단호히 반대해야 하며 반드시 포기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그러나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되어야 하며 무엇보다 북.미간의 대화가 해결의 중요한 관건』이라고 말했다.

김 대통령은 이어 『새 정부가 추구하는 민족간 화해협력과 국민참여 속의 국정개혁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면서 『노무현 대통령이 그 소명을 다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말했다.

김 대통령은 또 『이제 국정의 현장에서 물러간다』면서 『험난한 정치생활 속에서 저로 인하여 상처입고 마음 아파했던 분들에 대해 충심으로 화해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국민의 정부 5년...엇갈리는 평가

지난 98년 2월 「DJP 연합정권」으로 출범한 「국민의 정부」가 24일로 5년의 임기를 마감했다. 「헌정 사상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라는 빛나는 성과 위에서 출범한 국민의 정부의 출발은 최단기간내 외환위기 극복, 6.15 남북정상회담,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등이 보태지면서 화려의 극을 달렸다.

그러나 그 끝은 반대자들까지 처연한 감정을 가질 만큼 초라해보인다. 북한의 핵무장 움직임으로 최대의 치적이라던 햇볕정책의 성과는 반감되고 있으며 대북 비밀송금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김 대통령은 도덕성까지 의심받고 있다.

이같은 점을 의식, 김 대통령은 지난 12일 민화협 관계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역사속에서 잘못했으면 잘못한대로, 잘했으며 잘한대로 공정하게 평가받을 것』이라면서 당대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누구도 역사의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듯이, 당대의 평가에서도 벗어날 수 없다.

국민의 정부 5년은 소수정권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과 그 실패의 과정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김 대통령은 집권을 위해 이념적 지향이 다른 집단과의 공조, 즉 「DJP연합」을 선택했다. 이는 97년 대선 당시 외환위기로 집권 가능성이 그 어느때보다도 높았지만 김 대통령이 독자적으로 지지기반의 외연을 넓히는데는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을 뜻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김 대통령이 택한 방법은 「개혁의 독점」을 통한 집권층의 내부적 결속이었다. 이는 「개혁대 반개혁」이란 편가름을 낳았고 현 정부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누구나 반개혁으로 매도당하는 사태로 발전하면서 지지층이 급속히 떨어져 나가는 결과를 가져왔다.

지난 2000년 4월 총선 당시 김 대통령이 현행 선거법을 가리켜 『지킬 필요가 없는 법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면서 일부 시민단체의 낙선운동을 지지한 것은 개혁독점의 대표적인 예이다. 이는 다른 한편으로는 DJP 연합정권을 DJ 독자정권으로 전환하기 위한 「외곽 때리기」 전술이었으나 결국 실패로 끝나면서 그나마 정권의 안정을 지탱해주던 DJP연합 와해의 시발점이 되었다.

이후 편중인사의 정상화라는 미명하의 또 다른 인사편중과 이에 따른 지역감정 격화, 각종 권력형 부정부패와 대통령 아들들의 비리 연루, 민주당 정풍운동 등 집권층 내부의 권력다툼이 겹치면서 전통적 지지세력마저 등을 돌림으로써 김 대통령은 예상보다 훨씬 빨리 레임덕에 빠지게 된다.

김 대통령에게 노벨평화상 수상이라는 영광을 가져다준 햇볕정책이 파탄의 조짐을 보이는 것도 정책의 결정.추진과정을 독점한데 따른 결과로 볼 수 있다.

햇볕을 쬐면 외투를 벗을 것이란 햇볕정책의 기본발상은 광범한 의견수렴없는 독단적 판단에 바탕한 것이었으며 이에 대한 이의제기는 수구보수, 반통일 세력의 방해로 매도당했다. 사실로 드러난 대북 비밀송금도 햇볕정책 추진 주체들의 이같은 발상과 비밀로 일관한 추진방식에 비춰 보면 별로 놀라울 것도 없다는 평이다.

햇볕정책은 현재 남북화해와 통일의 초석을 낳았다는 평가와 북한의 변화를 전혀 이끌어내지 못한채 남남대결만 격화시켰다는 평가가 공존하고 있다.

전자는 김 대통령의 말대로 역사가 평가할 몫이다. 그러나 후자는 현단계에서 분명하게 확인되는 사실이다. 북한의 핵 개발은 햇볕정책의 실패의 움직일 수 없는 증거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대북 비밀송금 사실은 그동안의 남북교류가 기본적으로 「돈으로 산 평화」라는 점에서 햇볕정책 자체의 효용성과 정책 추진주체들의 도덕성을 통째로 의심케 하고 있다.

국민의 정부는 이같은 패착의 연속 속에서도 개별정책에서는 나름대로 큰 성과를 거둔 것들이 많다. 6.25 이래 최대의 국난이라던 외환위기를 최단시간내에 극복했으며 이를 기반으로 우리 경제구조가 선진화되는 기틀을 마련했고, 또 그동안 정책적 우선순위에서 낮은 위치에 있었던 복지체제를 강화하는 등 우리사회가 선진사회로 진입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데 기여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의약분업과 건강보험 재정통합의 사례처럼 임기중에 마무리짓겠다는 조급성이나 정권담당자들의 아마추어리즘 때문에 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것도 사실이다.

결국 국민의 정부 5년은 반대자들을 포함한 광범한 의견수렴없는 정책적 실험은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던져주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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