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제자에게 용서구하며-어제 슬픔 쉽게 잊는 우리는 죄인

-용서를 구하며

미영아! 이른 새벽부터 을씨년스럽게 내리는 이 비는 분명 너의 눈물이고 같이 간 넋들의 눈물이려니. 너를 보낸 슬픔은 어찌 부모 형제에 비할 수 있으련만 짧지 만은 않은 5년여 동안 너에게 피아노 가르치고 음악이론 가르치고 전공의 길도 염두에 둘 수 있다고 네 엄마께 권했던 나이기에 너를 보낸 슬픔은 네 부모 네 형제에 못지 않으리라.

그 지루하고 어렵던 연습과정을 싫증 한번 내지 않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결강 한번 없는 네 열성을 옆에서 지켜보았지. 꾸지람을 들어도 항상 미소로써 답하던 너였는데.

그래서 난 내 아이도 저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을 만큼 피아노에 열정을 가진 너였는데 결국 피아노를 가슴에 묻었구나.

우리 모두의 사랑 미영아, 지금 이 순간에도 너와 그리고 함께 간 넋들 앞에는 수많은 이들이 죄인이 되어 다시는 이런 슬픔을 맛보지 않겠다고 다짐과 용서를 구하고 있지만 상인동의 가스폭발사건이 그러하였듯이 언제나 다시는 일어날 것 같지 않던 사건들이 또 다시 되풀이 되는 사고의 얼룩. 어제의 슬픔을 오늘은 쉽게 잊어버리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이 이젠 정말 부끄럽기 그지없구나.

대통령이 왔다간들 국회의원이고 시장이 왔다간들 가신 넋들의 이 눈물 닦아 줄 수 있을까. 부모형제의 이 아픔 덜어 줄 수 있을까.

꿈을 안고 간 미영아. 네 이름 가슴에 묻고 하늘을 우러러보니 싱긋 웃고 있는 네 모습이 이 세상을 원망하는 것 같아 이 선생님 가슴을 짓누르고 있구나.

미영아, 고이 가거라. 이승에서의 아름다운 일들만 가슴에 품고 고이 가거라. 고이 가거라.

-피아노 선생님이었던 조용석(칠곡군 북삼면)씨가 실종된 이미영(18·경북예고 2년)양을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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