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미주 한인 조종사의 흔적 방송

'만약 그때 도쿄가 공습을 맞았다면'. KBS 1TV는 수요기획을 통해 20년대 항일운동을 펼쳤던 미주 한인 조종사의 흔적을 최초로 짚어보는 '도쿄를 폭격하라! 1920년 한인전투조종사들'(26일 밤12시)편을 방송한다.

아직 비행기라는 이름 자체가 생소하기만 했던 1920년. 그 때 이역만리 미국 땅에서 비행기를 이용해 항일 독립투쟁에 나서고자 했던 이들이 있었다.

캘리포니아 윌로우스 지역에 전투비행학교를 세우고 '동경에 날아가 쑥대밭을 만들자'는 결의로 비행사 훈련에 임했던 사람들. 그들의 뒤에는 미국 땅에서 피땀 흘려 모은 돈을 쪼개 물심양면 비행학교를 지원해준 무명의 미주 한인들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300만평에 이르는 농장을 경영하며 '쌀의 왕'으로 군림한 김종림은 그 부를 혼자 누리지 않고 비행학교를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의 존재는 역사 속에 묻혀있다.

'수요기획'은 독립의 꿈을 안은 한인 청년들이 이역만리 미국의 창공을 날아오르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비행학교 폐교 후까지 그들의 행적을 심층 취재했다.

우리는 한인최초의 비행사로 '안창남'씨를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안씨가 하늘을 처음 날던 때보다 1년 반이나 앞선 시점 미국에는 한인비행학교가 있었다.

캘리포니아 윌로우스. 미 서부의 작은 도시에는 아직 한인비행학교의 흔적이 남아있다.

80년이 넘게 방치되고 있지만 당시 사용되었던 비행기와 한인 비행사 6인이 착용했던 복장 등을 찾아 볼 수 있다.

한인비행학교는 노백린 장군과 김종림씨에 의해 주도되었다.

그러나 임시정부와 미주 한인들이 야심차게 준비했던 비행학교는 몇개월 못가 문을 닫게 된다.

그렇지만 한인항공학교 출신들은 중국군과 임시정부, 그리고 미국 CIA의 전신이었던 OSS의 요원으로 '냅코프로젝트'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면서 세계 각지에서 독립운동을 계속해 나간다.

이재협 기자 ljh2000@imae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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