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하철 1080호 전동차 승객들에게는 당초 알려진 것과 달리 대피 여유가 최소 15분 이상 있었는데도 사령실.기관사 등이 적절히 대처하지 못함으로써 대형 참사가 빚어졌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또 사건 축소.은폐 의혹(본지 20일자 보도)을 받아 온 지하철공사는 방화 참사 직후 1080호 기관사에게 전동차 전원을 끈(마스터 키 제거) 후 대피하라고 지시함으로써 승객들의 탈출 기회를 뺏았으며, 이 기관사의 일부 행적을 숨기고 경찰에 녹취록을 제출하면서까지 교신 내용 중 일부를 고의적으로 누락시킨 것으로 확인됐다.
대구지하철 참사 수사본부에 따르면 기관사 최씨는 지난 18일 사고 직후인 오전 10시쯤부터 밤 9시까지 11시간 동안 지하철공사 차량운영부 및 안심 차량기지사업소 관계자 등 7명을 만났고, 종합사령팀, 안전방재팀과 관리팀, 안심 차량기지사업소 등에 여러 차례 휴대전화 통화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18일 오전 10시8분 전후 마그네틱 테이프 원본에는 사고 직후 운전사령실 관계자가 최씨에게 전원을 끈 후 대피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기록돼 있으나 녹취록에는 이 부분이 빠졌다고 경찰은 전했다.
기관사가 이 지시에 따라 움직였을 경우 전동차 문이 잠겨 빚어진 대형 참사는 사령실의 잘못된 지시때문에 빚어졌을 가능성이 높아졌으며, 또 통화 시간대로 봐 발화에서 기관사의 최종 대피까지 20여분의 시간이 있었는데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음이 확실해진다.
게다가 경찰조사결과 1080호 기관사 최씨는 탈출 후 윗층으로 올라와 부근에 있던 소방관에게 "밑에 사람이 있으니 구조해 달라"는 얘기까지 전했으며 소방관은 "연기 때문에 내려가기 어렵다"는 말을 최씨에게 했다는 것. 최씨는 아무 부상도 입지 않았다.
지하철공사는 지난 23일 종합사령팀 통화 내역을 담은 마그네틱 테이프 30개 및 녹취록을 경찰에 넘기면서 운전사령실과 최씨간의 통화 내용 중 일부를 누락시킨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밝혀졌다.
이에 따라 경찰은 통화 내역을 누락시킨 지하철공사 감사부 직원 2명에 대해 처벌을 검토중이며 지하철공사 상부직원의 은폐지시가 있었는지 여부도 조사중이다.
한편 최씨는 또 18일 오전 11시30분쯤 사고 '개황'(사진1)을 작성해 보관하다가 같은 날 오후 동료에게 넘겨줘 밤 10시쯤 운전사령실로 전송했으며, 오후 6시쯤엔 '경위서'(사진2)를 작성해 안심차량기지사업소 승무팀 황병희 지도원에게 전달한 것으로 밝혀졌다. 19일 오전 6시30분쯤엔 '보고서'(사진3)를 승무팀 사무실로 전달했고, 20일 오후에는 황씨가 대신 '운전사고 및 운전장애 보고서'(사진4)를 만들어 경찰에 제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경위서'와 '사고 보고서'에는 대량 인명피해의 원인이 됐던 마스터 키 제거 사실이 포함됐으나 '개황' 및 '보고서'에는 그것이 빠진 것으로 확인됐다. 최씨는 경찰에 출두한 뒤 '개황'과 '사고보고서'를 제출했다.
한편 경찰은 지하철공사 구속영장 또는 사전구속영장이 신청된 지하철공사 직원 10명 외에 추가로 직원 11명에 대해 현재 내사중이며 혐의가 확인되면 사법처리할 방침이다.
경찰은 또 대구시 교통국 직원에 대해서도 지하철공사 예산지원 등에 대해 내사를 벌이고 있어 수사는 전방위로 확대될 전망이다.
사고 당일 오전 10시7∼11분 사이 운전사령 손모(42)씨가 1080호 전동차 기관사 최모(39)씨에게 휴대폰으로 지시한 내용이 지하철공사 마그네틱 테이프 분석을 통해 드러났다. 이 녹음장치는 사무실 안의 소리를 녹음하는 것이어서 기관사가 휴대폰을 통해 전달한 내용은 기록되지 않았다.
-- 빨리 인자(이제) 차 그렇게 놓고, 차 판 내려 놓고(전원 공급 중단시키고).
-- 다른 데로 도망 가, 올라 가라고!
-- 아 컴컴하고 그러니까, 판을 일단 내리고 승강장으로 대피하라고, 대피
-- 저 저 대합실로 대피하라니까
-- 그걸 모르니까 파악안되니까
-- 지금 일단 판 내려야 돼
-- 판, 판 내려놓고, 차 죽여놓고(시동 끄고) 가야 돼.
한편, 대구 지하철 참사 수사본부는 25일 윤진태 지하철공사 사장을 불러 관련 보고를 받았는지를 조사하고 공사 감사부장과 대질 신문을 벌였다. 이에 앞서 감사부장은 종합사령실의 CCTV를 검토했다고 진술했으며, 윤 사장은 지난 23일 경찰 조사에서 1080호 기관사의 행적에 대해 보고받은 바 없다고 진술했었다.
수사본부는 또 사건 당시 전동차 화재 현장을 보지 못했다는 종합사령실 근무자 진술의 진위를 가리기 위해 사령실 CCTV 테이프의 조작 여부 수사에 착수했다. 동시에 대구지하철 전동차 제작사에 대해 수사를 벌이는 한편 1997년 작성된 전동차 부품 시험성적서를 확보해 전동차 및 내장재 검사가 제대로 이뤄졌는지도 조사하고 있다.
24일 경찰로부터 구속영장이 신청된 관련 피의자 10명의 영장 서류를 검토한 대구지검 형사5부(부장검사 박해운)는 25일 7명의 영장은 법원에 청구했으나 1079호 전동차 기관사, 종합사령실장, 중앙로 역무원 등 3명에 대해서는 과실 여부가 불분명하다며 재수사토록 지휘했다.
영장이 청구된 7명 중 방화범 김모씨, 1080호 기관사 최모씨, 종합사령팀 직원 방모씨 등 3명은 영장 실질심사를 포기했고, 나머지 4명에 대해서는 25일 오전 10시 대구지법 45호 법정에서 양재영 영장전담 판사 심리로 실질심사가 이뤄졌다.
한편 안심 차량기지로 옮겨져 방치돼 온 중앙로역 수거 잔재물에 대한 정밀 수색 및 분류 작업에 25일 오전 착수했다. 현장에는 유가족도 입회했다. 수사본부는 중앙로역 주변에 대한 감식 작업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국립과학수사연구소 팀은 지난 23일 중앙로역에서 발견된 물질은 뼈가 아닌 것으로 최종 결론 내려졌다고 25일 밝혔다. 인류학적 검사 및 방사선 검사를 실시한 결과 이런 결론이 내려졌으며 동물의 뼈일 가능성도 없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실종자.유가족 대책위원회는 25일 낮 12시 중앙로역 지하1층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조해녕 시장 및 윤진태 지하철공사 사장의 구속 수사를 요구했다. 가족대책위는 또 대구시 사고 수습 대책본부 해체 및 총리실 산하 대책본부 신설 등을 요구, "대책본부장인 조해녕 대구시장은 이번 사건의 책임자여서 본부장 자격이 없는 만큼 총리나 행자부 장관을 본부장으로 하는 대책본부를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종규기자 jongku@imaeil.com
최경철기자 koala@imaeil.com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국정원, 中 업체 매일신문 등 국내 언론사 도용 가짜 사이트 포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