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불로동 고분군 봉무레포츠 공원

철학자가 아닌 사람도 가끔씩은 '삶이 무엇이고 어떻게 사는 것이 현명한가'를 놓고 머리를 싸매게 된다.

특히 절친한 사람이 갑자기 유명을 달리했다는 소식을 접할 때는 그 고민은 깊어진다.

생각이 '이렇게 아등바등할 필요가 없다'에 미치면 모든 것을 떨쳐버리고 훌쩍 떠나고 싶은 충동도 인다.

한 사람의 어처구니없는 행동에서 비롯된 대구 지하철 참사로 모두가 우울하다.

산다는 것이 허망하게까지 느껴진다.

자신과 가족, 친지, 친구 이름이 희생자 명단에 올라있지 않은 것은 감사한 일이지만 너무 기뻐할 일도 아니다.

인간이 그토록 두려워하는 죽음의 그림자가 요즘은 우리 곁에 너무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우리의 삶. 마음의 여유가 없더라도 한번 정도 중간정산하듯 차분히 정리해보는 것은 어떨까. 대구 도심 가까이 있으면서도 그다지 번잡하지 않은 대구 불로동 고분군과 봉무공원에서.

대구공항을 지나 불로동 화훼단지 앞 대로에 접어들면 오른쪽 앞쪽으로 '환한' 야산이 눈에 들어온다.

거무죽죽하게 보이는 먼 산과 달리 누런 호박색을 띤 곳이 바로 불로동 고분군이다.

사적 제262호인 불로동 고분군은 불로, 봉무, 도동 등 3개동에 걸쳐 있다.

면적은 9만여평. 이곳에는 5, 6세기 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200여개의 고분이 밀집해 있다.

여인의 젖가슴처럼 산 곳곳에 솟아있는 고분의 크기는 완전 제각각. 경주의 왕릉에는 크게 못미치지만 지름 20m, 높이 4m 정도로 큰 것도 있고 그보다 훨씬 작은 것도 많다.

안에 묻혀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모른다.

규모가 큰 것은 역사책에 나올 정도는 안돼도 과거 이 지역에서 힘깨나 썼고 돈깨나 있었던 사람이 묻힌 곳이 아니겠느냐고 추정될 뿐이다.

크다고 더 화려하지 않다.

생전에는 좀 더 위세를 부리며 살았는지는 몰라도 지금은 작은 고분의 주인과 마찬가지로 누런 잔디를 이고 말없이 누워 있다.

공원구역이라 해도 아직까지 특별한 편의시설은 없다.

입구 쪽에 있는 화장실과 작은 안내소가 고작이다.

입구 표지판은 대구공항에서 팔공산으로 통하는 대로를 공중에서 가로지른 경부고속도로 조금 못미처 설치돼 있다.

고분군 왼쪽으로는 고속도로가 동서로 뻗어 있다.

고속도로와 고분군의 거리는 가까운 곳은 80~100m 정도. 고속도로와 평행되게 고분군 왼쪽 가장자리에 1㎞ 정도 뻗어 있는 빽빽한 소나무 숲이 없다면 고분군 내에서도 고속도로에서 질주하는 차량 소음이 크게 들릴 것 같다.

사람이 많이 다닌 곳으로 산책로가 나 있다.

하지만 꼭 그 길을 택할 필요는 없다.

마음 내키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다니면 된다.

고분이 바람을 막아줘서인지 고분군 안은 아늑하다.

날씨만 따뜻하다면 고분을 베고 하늘을 이불삼아 드러누워 잠시 눈을 붙여도 좋을 듯하다.

볼록볼록 솟은 고분은 동네 어린이들에게는 잔디썰매장 구실도 충분히 해내리라는 생각이 든다.

고분군 복판에 몇 그루씩 무리지어 서 있는 소나무는 까치떼가 점령하고 있다.

고분군내에는 아직 사유지가 많다.

대구시가 지난 99년부터 매입을 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사들인 것은 사유지 7만4천여평의 54%에 불과하다.

개인 분묘도 200여기에 달한다.

개인 분묘는 고분과 달리 앞에 표지석이 있고 번호가 매겨진 나무푯말이 꽂혀 있다.

'이곳은 아직 사유지'라고 말하는 탱자나무 울타리 밑에는 노란 탱자가 뒹굴고 울타리 안에서는 새해 농사를 준비하는 촌로가 부지런히 손을 놀린다.

주택가와 인접해 있는 고분군 동쪽 가장자리는 조금은 어설프다.

주택가와 경계도 확실하지 않은데다 주변 정리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어서다.

몇몇 허름한 집들은 삶이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작년에 대구시의 의뢰로 네 번째로 이루어진 발굴작업에서는 금동제 귀걸이 등 460여점의 유물이 나왔다.

하지만 지난 80년 이곳이 고분공원으로 지정되기 전에 대부분의 고분은 도굴당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고분군 올라가는 길이 대로에서 집입하는 것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불로교를 건너 바로 우회전한 뒤 적당한 곳에 차를 세우고 누런 산을 향해 가면 어디서든 오를 수 있다.

도동 방면으로 한참 올라가도 통하는 길이 있다.

토.일요일에 찾으면 안내소에서 대기하는 문화유산해설사로부터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불로동고분군에서 동화사쪽으로 700~800m쯤 올라가면 입구 표지판이 나온다.

농업용수시설인 단산지를 품고 있는 공원의 면적은 51만여평. 정구장, 배드민턴장 등 각종 체육시설과 산악자전거 코스, 나비 생태공원 등이 있으며 지난 92년 10월 개장했다.

나는 제비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해서 '제비못'이라고도 불리우는 단산지 주변엔 산책로가 잘 마련돼 있다.

산책로 길이는 3.7㎞. 못을 끼고 한바퀴 도는데 1시간이면 족하다.

배추나비 한 종류이지만 사시사철 팔랑팔랑 나는 나비를 볼 수 있는 나비생태공원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문을 연다.

연구사 김순환(28)씨에 의해 키워진 나비는 오전 11시에서 오후 3시 사이 가장 활발하게 움직인다고 한다.

흐린 날보다는 태양이 좋은 날 더 많이 날고. 영상관에서는 나비의 일생을 담은 비디오테이프가 쉬지 않고 돌아간다.

나비 생태공원 옆에는 작은 규모이지만 지압도로도 있다.

산책로가 시작되는 나비 사육장 앞에서는 진돗개와 삽살개, 풍산개가 방문객을 반긴다.

쌍쌍이 우리 안에 갇혀 있다보니 이곳에서는 끈임없이 새 생명이 태어난다.

신랑과 동갑내기인 삽살개 암놈 금호(2001년 11월생)는 지난 4일 새끼 다섯 마리를 낳았고, 지난해 10월 새끼 네 마리를 출산한 풍산개 암놈 명월은 또 만삭이다.

진돗개 암놈 우리도 3개월된 새끼 두 마리를 돌보고 있다.

단산지 물은 산그림자가 비쳐 짙은 녹색이다.

물 가운데는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숫자가 많이 줄어든 오리가 한가로이 떠 다닌다.

물이 차기 전에 빨리 가지를 벌리고 싶어서였을까. 땅에 바짝 붙은 채로 둥치를 벌린 이름 모를 나무가 조금은 을씨년스럽다.

여름철 수상스키 동호인들이 북적댔던 보트 선착장엔 정적이 감돈다.

키 큰 소나무 사이를 꽉 메운 관목숲 어디선가 산새가 울어댄다.

목 마른 토끼가 물을 찾아 내려오는 듯한 소리도 들려온다.

손을 꼭 잡고 산책하던 노부부가 맞은편에서 오는 사람 보기에 민망한 듯 잠시 떨어졌다 다시 손을 잡는다.

저수지를 왼쪽으로 두고 이리 구불 저리 구불한 산책로는 산악자전거 코스와 만나고 등산로도 이어진다.

산책만으로 모자란다면 그냥 오르면 된다.

험하지 않기 때문에 별다른 준비는 필요하지 않다.

산책로가 끝나고 제방에 오르면 무엇이 그리 급한지 빠르게 달리는 차량들이 다시 눈에 들어온다.

송회선기자 so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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