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자노트-중앙역 현장에서

95년 4월 화사한 봄꽃들 위로 부슬비가 내리던 어느날. 기자는 '절규'의 현장에 서 있었다.

한줌 재로 변한 사랑하는 아들과 딸, 남편과 아내를 보며 힘없이 쓰러지는 가족들, 그리고 그들의 피맺힌 통곡소리. 상인동 참사 희생자들은 그렇게 가족들의 절규 속에 한줌의 재로 변해갔다.

다시 2003년 2월. 기자는 온통 국화꽃 더미로 뒤덮인 지하철 참사 현장인 중앙역에 있어야 했다.

남은 이의 슬픔과 아픔을 지면에 담기 위해서였다.

유가족의 '절규'는 8년전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러나 그때와는 또다른 비통함이 중앙역에는 있었다.

잃어버린 가족의 뼈 한점 만져보지 못하는 실종자 가족들의 흐느낌이었다.

그들은 그 참을 수 없는 슬픔과 애절함을 억누른채 잃어버린 가족의 흔적을 찾기위해 애써 자신을 추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차마 떠나 보내지 못하는 이에 대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을 글로 담아 사고 현장 곳곳을 가득히 채워놓았다.

'저에게 이토록 좋은 엄마를 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린다'고 끝을 맺는 딸의 편지에서부터 '나의 전부였던 너를 차마 떠나 보낼 수 없다'는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눈물 담긴 편지까지. 희생자 가족들의 이러한 '슬픔'은 매일신문의 '추모판'을 통해서도 그대로 옮겨진다.

매일 10여통이 넘는 희생자 가족과 친지, 친구와 동료의 추모글들이 지면에 담기고 있다.

숨을 억누르는 연기속에서도 '오빠 사랑해'란 한마디 말을 남기고 사라진 아내를 그리워하며 '나도 당신만을 사랑한다'고 울부짖는 남편의 애절한 사모곡. '지금이라도 웃는 얼굴로 나타나 아빠'라고 부를 것 같아 피울음을 삼키며 밤새워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는 딸 잃은 아버지의 가슴저미는 사연까지. 차마 지면으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안타까움과 슬픔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편집국에서 추모판을 꾸미는 기자의 심정 또한 8년전 화장장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때와 지금. 달라지지 않은 또 한가지가 있다.

'다시는 이런 대한민국에 태어나지 말라'는 부모의 한맺힌 절규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