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史(한홍구 지음, 한겨레신문사 펴냄)'는 재미있는 책이다.
저자 한홍구(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씨는 '객관적 서술'로 역사를 쓰기보다는, 자신의 진보적인 시선으로 우리 근현대사 26개 테마를 조망하고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주제지만, 소홀히 넘기거나 잘 몰랐던 부분을 재미있게 설명해주고 통쾌하게 비판하고 있어 한번 책을 잡으면 놓고 싶지 않은 책이다.
책 말미의 '병영국가 대한민국'같은 부분에서 다소 개인적 의견이 지나쳐 관념적으로 흐르는 듯 하지만,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면 저자의 신선한 감각과 의욕이 돋보이는 책임에 틀림없다.
△왕정은 왜 왕따당했나=일제로부터 해방됐을때 유력한 정치세력들은 한결같이 공화제 도입을 지지했다.
그당시 왕정의 복고나 입헌군주제는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3·1운동 이전 1910년대에는 대한제국의 부활을 바라는 복벽주의(復僻主義)나 최소한 입헌군주제를 하자는 운동·주장이 있었지만, 독립운동 과정에서 이씨 왕가의 역할이 거의 없었는데다 우리 주권을 일본에게 넘겨준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점에서 왕정복고 주장은 아예 나오지 않았다.
1919년 조선민족대동단이 고종의 둘째 아들인 의친왕 이강의 망명을 시도했고, 이강이 중국 단동에서 체포된 것이 이 왕가 인물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독립운동에 직접 관여한 사건일 뿐이다.
1948년 단독정부 수립 이후에도 이승만 대통령은 비운의 황태자 영친왕의 귀국을 바라지 않았다.
△김두한은 항일영웅인가?='야인시대'나 영화 '장군의 아들'을 보고 김두한을 항일운동가로 착각할 수도 있는 시절이다.
솔직히 김두한에게 아버지 김좌진 장군의 후광이 없었더라면 깡패의 보스나 해방후 백색테러의 행동대장중 하나로밖에 기억될 수 없을 것이다.
김두한 신화의 출발은 1980년대 후반 홍성유가 김두한의 깡패 시절을 다룬 소설 '인생극장'을 조선일보에 연재하면서부터. 드라마나 영화는 지극히 소설적인 내용인 셈이다.
사실 드라마에 나오는 혼마치(本町·충무로)의 두목 하야시는 조선사람 선우영빈(해방후 건설협회 부회장)이었고, 그 부하들도 대부분 조선 사람이었다.
다만 그들은 일본인들과 좀더 유착됐을 뿐이었다.
김두한도 자전거 영업소를 넘겨받는 조건으로 하야시 패에 통합됐다는 증언이 나오는 것을 보면 하야시와의 관계가 그리 대립적 관계가 아닌 것으로 같다.
김두한도 한때 만담가 신불출(申不出)의 영향을 받아 좌익계열의 조선청년근위대에 가담해 활동했지만 죽마고우 정진룡(일명 정진영)과 대립, 부하들을 이끌고 우익청년단체 쪽으로 넘어갔다.
그후 그는 5년간 국회의원을 하면서 야당 집회를 보호했고, 국회에서 장관들을 향해 똥물을 뿌리는 쾌거(?)를 이뤘다.
황당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인간형이었다.
△태극기는 정말 민족의 상징인가=태극기만큼 탄생과정이 파란만장한 것도 없다.
사실 태극기 탄생에는 청나라의 입김이 깊숙이 작용했다.
1882년 청의 사신으로 조선에 와있던 마건충은 김홍집과의 회담에서 개인의견임을 전제로 '주역'에 맞춰 조선의 국기를 흰바탕에 태극그림을 사용하고 주위에 8괘를 그리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임오군란 직후 사신 박영효가 일본 국적의 메이지마루호를 타고 일본으로 사과하러 가던 중 국가의 표식인 태극기를 부랴부랴 만들었다.
당초 박영효는 마건충의 의견에 따라 태극그림에 8괘를 그리려다 선장 제임스가 '8괘가 다 들어가면 복잡하고 다른 나라 사람들이 따라 그리기 힘들다'고 충고해 4괘만 남게 된 것이다.
태극기는 여러 외국인들의 머리를 빌려 태어난 셈이다.
독립문과 김구·윤봉길의사의 사진 등에도 4괘의 모양은 현재와는 다르다.
1949년 국기제정위원회가 현대의 도안대로 확정하기까지 태극기의 음양 각도와 괘 배열을 둘러싸고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서는 요즘 초교생들이 4괘를 잘못 그려 혼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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