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하철 방화 참사가 발생 10일을 넘겼으나 시민들은 여전히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져 있다.
경제적 피해가 7천억원 가량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지만 도시 브랜드 가치가 급격히 추락하고 시민들의 자신감이 무너져 정신적 피해는 계량조차 불가능하다.
허물어진 지역사회를 추스를 새로운 리더십을 창출하고 지역 사회 전반의 시스템을 재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회적 손실= 시민들은 겨우 5.4ℓ의 휘발유가 무려 2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가도록 놔 둔 너무도 허약한 사회안전시스템, 무기력한 대응, 안일한 수습 과정에 절망하고 있다.
후진국형 사회안전 시스템을 여실히 증명한 참사로 대구의 도시 브랜드는 먹칠됐고 시민들의 자존심은 큰 상처를 입었다.
그렇잖아도 쇠락한 경제기반과 정치적 고립감에 갇혀 있던 시민들에게 이번 참사는 "과연 대구가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하는 근본적인 회의감마저 갖게 만들었다.
돌파구를 만들어야 할 시정 책임자들마저 신뢰할 수 없게 만들었다.
지하철공사 등 사고발생 책임기관은 물론이고 경찰·검찰 등 수습기관마저 믿을 수 없게 됐다.
대구경북개발연구원 이정인 지역개발실장은 "이번 참사로 지역사회의 취약성이 낱낱이 드러났다"며 "공무원은 공무원답지 못했고 경찰은 경찰답지 못했다"고 결론지었다.
대구대 사회학과 홍덕률 교수는 "지역민들이 지금처럼 의욕상실, 좌절감, 허탈감으로 인한 정신적 공황에 오랫동안 빠져 있은 적은 없었다.
이것이 가장 큰 사회적 손실이다"고 말했다.
◇경제적 손실=IMF사태 이후 침체된 지역경제는 이번 지하철 참사로 더욱 움츠러들게 됐다.
대구시는 참사 물적피해를 461억원으로 추산했으나 그것은 지하철만 집계한 것이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중앙로역 주변 유통업과 대구지역 경기침체로 인한 피해를 최소 2천850억원(지역 총생산의 1.54%)에서 최다 5천700억원(3.08%)까지 잡는 등 대구의 경제적 손실이 7천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하지만 현대경제연구원은 "눈에 보이는 손실보다 국가 및 도시 이미지 추락, 해외수주 악영향 등 보이지 않는 손실이 더 크다"고 환기했다.
대구상의 임경호 기획조사부장은 "지역 도심영향권 내 유통업체의 직접 피해는 물론 외국 바이어들의 발길마저 끊겨 앞으로도 피해는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화·체육계 타격= 대구 U대회(8월), 오페라 하우스 개관(5월) 등 굵직한 국제행사 및 축제를 앞둔 지역 문화·체육계는 침울한 시민정서와 국제적 신뢰 추락으로 행사 자체가 크게 위축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대구U대회 조직위원회는 당초 이번 대회에 170여개국 선수단이 참가할 것으로 전망했으나 기대가 어긋날까봐 조바심내고 있으며, 관광 수입을 기대했던 시중 업계 분위기도 덩달아 가라앉고 있다.
지난 1월 중순부터 계속돼 온 대구시민프로축구단(대구FC) 시민공모주 청약도 실적이 4억7천만원에 머문 채 이번 참사 후 거의 끊겼다.
오페라하우스 개관에 맞춰 다음달 16일 열기로 했던 대구예총 주최의 오페라 세미나는 무기한 연기됐다.
각종 신춘맞이 축제서도 규모를 줄이거나 일부 프로그램을 없애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예총 권정호 회장은 "대구를 알릴 좋은 행사가 줄지어 준비돼 있는 중에 참사가 발생해 문화도시 대구의 이미지가 크게 실추됐다"고 안타까워 했다.
◇사회시스템 재구축해야= 이번 참사를 계기로 사회 전반의 시스템을 다시 구축하고 새로운 리더십을 창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홍덕률 교수는 "우선은 하루빨리 사고수습 주체를 보강해 유족과 시민들의 신뢰를 회복해야 하고 이 일에는 지역 지도층과 시민·사회단체·언론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경북대 전자공학과 이종현 교수는 "이번 참사는 방화범 개인이나 지하철공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총체적인 시스템이 고장나 불거진 문제"라며 "사회 시스템을 재구축하기 위한 집단 학습의 장을 마련하자"고 제안했다.
시민들과 각 분야 전문가들이 참여해 대구 사회의 전반적인 시스템을 정비해 내야 비로소 시민들이 정신적 공황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
시민들은 엄청난 희생을 지역사회 발전의 밑거름으로 승화시켜 고인들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참사를 재도약의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최병고·이창환·문현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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