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통마을-봉화 창마마을

춘설이 난분분한 요즈음 날씨. 이라크 전쟁위기와 북핵 등으로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최근 국내.외 정세와 너무 닮았다.

경칩을 하루 앞뒀지만 봉화에는 10㎝가 넘게 눈이 내렸다.

봄눈 치고는 적잖은 양. 도로 곳곳이 미끄럼판이다.

봉화읍내에서 내성천을 따라 오전약수터 방향으로 10여분 쯤 가다 보면 전형적인 배산임수형의 고풍스러운 남향 마을이 한눈에 들어 온다.

산봉우리가 깎아지른 듯 높다란 먼 산에 비해 마을 주변 산세가 나즈막하고 둥그스럼해 언뜻 보기에도 마을 전체에 아늑함이 감돈다.

울창한 제주 솔숲과 두터운 돌담이 제주도와 너무나 닮았다.

육지속 제주도인가? 고색창연한 전통 고가옥과 한데 어우러져 삼다(三多)의 고장을 닮은 마을 모습이 이채롭다.

풍산 김씨가 이곳에 터를 닦은 이후 300여년간 세거해 온 봉화군 물야면 오록1리. 근동 사람들은 이 마을을 창마(倉村)로 부른다.

구휼미를 저장하는 큰 창고가 마을 입구에 세워진 후부터 불리워진 이름이다.

태백산 줄기에서 뻗어나 온 노봉산이 마을 뒤를 지키고 내성천 상류가 마을 앞을 흐른다.

60여호의 마을 주민 생업은 모두 고추와 벼농사다.

산골이지만 비교적 넓은 들이 펼쳐져 있고 마을로 가는 길섶 둑위에는 수백년된 소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져 있다.

이게 바로 제주 솔씨를 싹 틔워 내 소나무 숲을 만들었다는 청룡둑(제주 솔숲). 허리를 굽히고 구부정하게 서 있는 노송이 마치 정중히 손님을 맞는 듯 하다.

마을 입구에서 만난 주민 김창형(60)씨는 "내성천 건너편엔 만석산이 우뚝섰고 마을 좌우측에 있는 천석산과 봉황산이 좌청룡·우백호지요"라며 풍수지리상 인재배출 요람이라는 도화형의 마을 지세부터 자랑했다.

이 마을 입향시조는 안동 풍산 김씨(풍산읍 오미동) 시조인 문적 선생의 18세손인 노봉 김정(金政)선생. 제주 목사(1688년)를 지낸 그는 숙종 22년(1696년)즈음 이곳에 들어와 터를 잡았다.

마을 서편에 장승을 세운 뒤 집을 짓고 성황당을 마련한 그는 망와 김영조, 장암 김창조, 학사 김응조 등 세분의 증조부를 모셔 와 자손들과 함께 한 마을을 이루면서 세거를 시작했다.

한때 130호의 고가옥이 즐비했던 마을 규모는 삼남의 4대 길지인 봉화 닭실마을보다 가구 수로는 더 대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 정조때는 취헌 김종태, 동소 김중하, 오촌 김규운 등 3명이 동시에 참판으로 재직하는 등 과거로 배출한 인재가 70여명에 이르러 백호출림(白虎出林)의 옥당(玉堂) 마을로 영남에 명성을 떨쳤다.

노인회관에서 만난 김두호(71.2001년 매일신문 보화상 수상자)씨는 "해방 직후까지만 해도 집집마다 문간채가 달린 솟을대문이 있었는 데 관리 소홀로 불이 나거나 무너져 이제는 모두 사라졌다"며 아쉬워 했다.

제주도와의 인연은 노봉 선생이 제주 목사 재직 당시 제주에 사천서당을 세우고 화북포구를 축조하는 등 선정을 베푼 덕분. 노봉을 흠모하던 제주민들은 나중에 그의 장례식 조문을 위해 마을을 찾게 되면서 교류가 시작돼 오늘에 이른다.

지난 1996년 12월에는 제주도청 문태수 정무부지사를 비롯해 제주도민들이 이 마을을 찾아 와 노봉의 후손들과 함께 창마 입구에서 노봉 김정 추모비 제막식을 갖기도 했다.

이 마을에서는 입향시조인 노봉과 망와, 학사선생을 기리는 불천위 제사를 300여년간이나 모셔 왔다.

산간 벽지 마을에서 조상을 세분이나 불천위로 모시는 경우는 드문 일. 그 만큼 풍산김씨 후손들은 나라에 충성심이 지극했던 까닭에 김재창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등 지금도 육군.공군에는 이 마을 출신 현역 장성이 수두룩하다.

학사선생 12대 손인 김용섭(73.물야면 노인회장)씨는 "마을 입구 삼거리에 솟대거리가 있는데 그 옛날 문중 자손들이 과거에 급제할 때 마다 솟대를 세워 축하해준 곳"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은 극심한 이농으로 사람들이 마을을 떠나면서 이 마을 풍산 김씨 후손들의 충효교육장었던 장암정(경북도 문화재자료 150호) 마당은 잡초에 뒤덮여 있다.

마을의 자랑거리인 불천위 제사도 후손들이 도시로 떠나 뿔뿔히 흩어진 채 각기 지내고 있다.

지붕 곳곳에서 흘러 내리는 기왓장과 잡초만 무성한 고가옥 마당. 여느 전통마을 처럼 이 곳도 지난 풍상을 대변해 주는 허허로운 모습들 뿐. 다행히 봉화군청은 올해부터 24억원을 들여 이 마을을 전통 문화 체험마을로 다시 복원할 참이다.

낡은 기둥을 교체하고 번와.기단.창호를 고치고 허물어진 담장도 보수하고 방앗간과 우물, 군데군데 초가집도 새로 짓는다.

봄눈이 흩날리는 4일 오후 뚝딱뚝딱 서까래를 깎고 새 기둥에 대패질하는 목수들의 분주한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마을 주민들의 얼굴에는 그 옛날 이 마을의 복된 기운까지 되찾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역력했다.

봉화.권동순기자 pino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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