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지하철 참사-남은 자가 할일

참사 후 대구지하철공사는 전동차에 경찰관까지 투입해 안전도를 높이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것은 불과 2년 전과는 전혀 반대되는 태도. 그때는 기관사조차 없는 무인 운행을 추진했었다.

"이제서야 소방관과 경찰관까지 전동차에 투입한다고 합니다.

승객 안전은 고려 않은 채 승무원도 필요 없다던 어른들은 다 어디 갔습니까. 경비 절약 효율 극대화가 가장 중요하다던 사람들 아닙니까?" 지하철공사 노조원들이 극단적인 태도 변화를 대비시켰다.

1995년 4월 대구 상인동 지하철 공사장에서는 도시가스가 폭발해 101명이나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대구도시가스 상인관리소 나해권 주임은 "그 일대 도시가스 사용 가정의 40여%는 항상 가스 안전점검을 받지 않으려 해 애를 먹는다"고 했다.

엄청난 참사를 바로 옆에서 겪고도 여느 시민들이나 다를 바 없다는 얘기.

세계 3대 지하철 참사 중 2, 3위 기록을 보유하게 된 대구는 전국에서 산업재해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도시이다.

대참사의 바탕이 이미 이뤄져 있었다고 봐도 무방할 지경. 노동부가 작년 상반기 전국 사회간접자본시설 건설 현장 268개의 재해율을 조사해 '적색 사업장'으로 분류한 25개 중 9개가 대구.경북에 있었다.

지하철 공사장 6개, 고속도 공사장 2개, 발전소 건설현장 1개 등이 그것. 특히 지하철 공사장은 전국 9개가 적색으로 판명났지만 그 중 70%는 대구였다.

대구.경북은 2001년 하반기 조사 때도 전국 18개 적색 현장 중 44%(8개)를 차지해 2년 연속 전국 최고 재해율을 이어갔다.

대구 경실련 시민안전센터 양승대 사무국장은 "산업 재해는 근로자 개인 실수보다는 건설 현장 시스템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왜 이런 일이 계속되고 있는 것일까?

영남대 사회학과 박승우 교수는 "1970년대와 1980년대를 살아 오면서 인명보다는 성장과 성과를 중시하던 마인드가 형성돼 여전히 시민들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기때문"이라고 했다.

그 탓에 1990년대 이후에도 대구 상인동 참사,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 방화 참사로 파괴력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 나해권 주임은 "가스 안전 점검을 거부하는 사람의 대다수는 40, 50, 60대"라고 했다.

성장 제일주의 시대의 안전 불감 문화가 그 시대를 살아온 이들에게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이다.

양승대 사무국장은 "성장.성과 제일주의가 안전제일주의로 바뀌고 인명을 발전보다 중요시하는 의식 변화가 없이는 문제가 해결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제는 세상이 바뀌었다.

성장보다는 분배를 중시하는 시대가 열렸다.

성과보다는 안전을 우선시하는 세대가 사회의 주류로 부상했다.

시민단체들에는 '안전센터'라는 부서가 자리잡았고, 국가 기관인 소비자보호원에까지 '안전팀'이 생겼다.

소비자들은 무엇보다 안전을 중시해 소비자 권리를 주장하게 됐다.

전에는 시민들이 국가 존재의 제일 목적을 으레 '성장 발전'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북한 핵 사태에서도 보듯 이제 많은 시민들은 국가의 제일 목적은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것으로 생각을 바꿨다.

이런 변화를 읽지 못하면 정치인들도 선거에서 패하기 십상이다.

노무현 정권 등장이 의미하는 바도 바로 이런 변화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해 놓고 있다.

박승우 교수는 중앙정부가 자신의 가장 중요한 임무가 안전임을 명백히 인식해 역량을 집중시켜야 하고, 지하철 등 중요 시설에 대해서는 직접 나서서 획기적인 안전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했다.

지방정부도 예외가 아니다.

위천단지 건설도 중요하지만 대구시가 더 우선해 힘 쏟을 분야는 시민 안전이다.

물론 성장이 더 중요하게 느껴지던 시절도 있었고, 그 건 시대적 상황으로 봐 불가피할 수도 있었다.

인명을 희생하더라도 경비를 줄여 더 많은 성과를 내야한다고 '선택' 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은 배고픔이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아직도 적잖은 사람들이 국가나 지방정부의 능력.치적 평가를 발전과 성과에서 따지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달라졌다.

이제 한 시대를 넘어서야 하는 분기점에 다다랐다.

성장의 시대를 넘어서야 하는 것이다.

한국산업안전공단 대구지도원 임춘근 검사팀장은 "기성세대의 핏속에 흐르고 있는 안전 불감 문화를 깨기 위해서는 자라나는 세대에게 더 이상 성과 제일주의 의식을 물려줘서는 안된다"고 했다.

최경철기자 ko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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