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엔론사태로 비화되고 있는 SK글로벌의 분식회계 여파로 환율 및 금리가 폭등하고, 해당 기업들의 주가가 폭락하는 트리플(삼중) 악재로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12일 현재 원.달러 환율은 전날에 비해 15.1원 오른 1천245원에 마감했다. 이는 작년 10월 18일(1천247원)이후 5개월여만에 최고치다. 지난 5일부터 급등했던 환율은 전날 정부 개입으로 하락했다가 SK글로벌 문제가 시장에 충격을 주면서 다시 급등세로 돌아섰다. 외환시장 전문가들은 정부의 시장개입이 지속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이 퍼지면서 장 막판 달러 '사자'세가 몰린 것으로 분석했다. 시장에서는 임박한 미국-이라크 전쟁과 북핵 문제에 SK글로벌 분식회계까지 겹쳐 원화 약세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시장 한 관계자는 "1천260원까지 오를 것으로 보고 있으며 상황이 악화될 경우 1천300원선도 위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채권시장에서도 SK 파문과 관련한 환매(중도해약)사태와 시장 참가자들의 불안감이 확산되며 지표금리가 5%대로 올라섰다. 3년 만기 국고채 수익률은 전날보다 0.51%포인트 폭등한 연 5.20%를 기록, 지난 1월 14일 5.01%에서 하락한 뒤 한달만에 5%대를 훌쩍 넘어섰다. 지표금리 하루 상승폭도 외환위기 당시인 지난 1998년 3월 31일 2.45%포인트 이후 가장 큰 수준이다. 5년 만기 국고채 수익률은 0.46%포인트 상승한 5.35%를, 3년 만기 AA- 회사채 수익률은 0.60%포인트 오른 5.85%를 각각 나타냈다. 양도성예금증서(CD) 91일물도 0.19%포인트 급등한 4.70%를 보였다. 시장 전문가들은 SK글로벌 파문으로 기관들이 관련 펀드 환매에 나섰으나 매수세는 '실종'에 가까울 정도로 위축돼 채권 수익률이 급등(채권값 급락)한 것으로 분석했다.
검찰이 SK글로벌 분식회계에 대한 수사 이후 투신권에서는 SK글로벌 회사채와 기업어음 1조원이 편입된 펀드에서 5조1천억원이 빠져나갔다. 12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12일 투신권 펀드의 증감을 잠정집계한 결과 환매는 8조원이며, 신규자금유입은 2조9천억원으로 순환매 규모는 5조1천억원에 달했다.
투신사 한 관계자는 "SK글로벌 관련 펀드에 이어 SK그룹 계열사 전반에 걸쳐 환매가 들어와 금리가 폭등했다"며 "SK 충격이 어디까지 이어질 지에 시장 참여자들이 극도로 불안해 하고 있다"고 말했다.
12일 주식시장은 거래소시장 종합주가지수가 520선까지 추락하는 등 출렁대다 프로그램매수에 힘입어 0.72포인트 하락에 그친 531.81로 마감했다. SK글로벌, SK 및 SK글로벌 주채권은행인 하나은행의 주가가 하한가를 기록하는 등 SK글로벌 분식회계와 관련된 종목들의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했다.
이대현기자 sky@imaeil.com
◈ 분식회계 파문... 국가 경제에 상처
SK글로벌 분식회계 파문이 북한 핵, 미국-이라크 전쟁 위기 등 악재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 경제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SK글로벌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진 이후채권수익률과 환율이 큰 폭 상승하는 등 금융시장이 크게 동요하고 있고, 투신사 사장단은 13일 환매사태에 확산에 따른 긴급 대책회의를 갖고 중앙은행의 콜금리 인하를 요청하기로 했다.
미국-이라크 전쟁 우려로 내수 및 설비투자가 위축되면서 촉발된 경기 하락세가 북한 핵문제 영향으로 속도를 더하고 있고, 신용카드 부실로 촉발된 가계부채 문제가 확산될 조짐을 나타내고 있다.
여기에 SK 분식회계가 밝혀지면서 불똥이 다른 그룹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무디스 등 신용평가기관들은 북핵 문제 등을 앞세워 신용등급하향 조정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경제전문가들은 이같은 '4각 파도' 가운데 어느 하나도 자율적이고 신속하게 해결될 사안이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고 보고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 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투신사 사장단 콜금리 인하, 국고채 3조원 매입 요청
투신사 사장단은 13일 환매사태 확산에 따른 긴급 대책회의를 갖고 중앙은행의 콜금리 인하를 요청하기로 했다.
투신 사장단은 이번 환매사태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채권시장 안정을 위한 정부의 긴급 대책이 필요하다고 보고 이같이 결정했다.
투신사장단은 아울러 중앙은행 자금으로 국고채 3조원규모 매입과 통안채 중도상환을 요구하기로 했다.
또한 금융기관들이 연기금 등의 환매를 자제해 줄 것을 당부하고 채권시장 안정기금의 즉시 조성을 요구했다.
투신 사장단은 또 MMF(머니마켓펀드) 판매사들에 대한 환매 유동성 지원이 시급하고 환매확산을 막기위해서는 시장의 심리적 안정이 중요하다는데 인식을 같이 하고 정부의 긴급대책을 건의하기로 했다.
투신 사장단은 이날 재정경제부를 방문, 이같은 내용을 담은 건의문을 전달할 예정이다.
▲ '한국판 엔론 사건'=경제전문가들은 SK글로벌의 분식회계 문제에 대해 "한국판 엔론사건(미국의 에너지 대기업인 엔론사가 회계장부의 수치를 조작, 회사 재무상태를 실제보다 좋게 위장했던 사건)"이라고 평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많이 개선됐다고 평가받던 한국의 회계시스템이 일거에 위협받게 됐다는 것.
SK 분식회계 문제는 무엇보다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부정적인 요인으로 반영되고 있다. 미국계 증권사 한 지점장은 "세무당국과 금융감독당국의 기능에 총체적 문제가 있다는 얘기이며, 시스템에 구멍이 나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외환전문가들은 "정부가 개입하지 않을 경우 환율이 달러당 1천300원까지 상승하고, 외평채 가산금리도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고 예측했다. 일부에서는 감독당국이 분식회계에 대해 명확한 정리를 함으로써 이 부분의 투명성이높아지게 됐다는 견해도 있으나 아직까지도 한국기업의 회계투명성이 의심스럽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 금융시장 교란 우려=SK글로벌 사건이 표면화된 시기가 좋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북핵 문제로 한국의 신용등급 하락 가능성이 나오고, 정부가 이를 막기 위해 무디스 등 신용평가사를 찾아간 가운데 사건이 터져 신용평가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신용등급의 하락은 곧바로 한국의 대외신인도에 악영향을 미쳐 외평채값 하락은 물론 공공.민간부문의 차입금리 상승, 주가하락, 환율 상승 등 경제위기를 한층 더할 요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은행권에서는 이미 SK글로벌 사건으로 발생할 은행의 이익 감소액이 1조원 가까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는 2002년 전체 은행권 이익의 20%에 육박하는 금액. 은행들이 가계대출 연체 축소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SK글로벌 문제마저 제대로 해결되지 않을 경우 금융시장 전체가 교란될 가능성도 크다.
주식시장의 주간단위 수급지표도 10년래 최악의 침체 상황에 놓였다. 대신증권에 따르면 주식 매수.매도 자금의 유입과 유출을 나타내는 지표인 MFI(Money Flow Index) 주간지수가 12일 8.21로 93년 이후 가장 낮게 형성됐다.
▲"정부차원 대책 필요"=SK글로벌의 분식회계에 대해 전문가들은 30~40년간의 고도성장 과정에서 생긴 부실을 제때 정리하지 못해 발생한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특히 종합상사 경우, 과거 주요 재벌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다 대우와 쌍용처럼 그룹 전체의 부실을 떠안고 무너진 경우가 많았다는 지적이다.
경제전문가들은 "국내.외 악재에다 SK글로벌 분식회계 파문으로 신용등급에 악영향을 미치고, 이것이 다시 경제에 불안감을 안겨다주는 악순환이 우려된다"며 "정부는 펀더멘털과 관련된 경제실상을 적극적으로 홍보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 외국인 투자자는 "정부가 기업을 살리면서 회계 투명성을 높일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이대현 기자 s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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