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문인.예술가들이 이 세상을 떠날 때마다 새삼스러워지는 명언이다.
기원전 4세기경 그리스의 의학자 히포크라테스가 한 이 말을 두고 '의술'을 '예술'로 오역(誤譯)한 데서 생긴 해프닝으로 보는 시각도 없지는 않다.
'인생은 짧아도 인간 생명을 주관하는 의술은 계속 이어지리라'는 것이 원래 히포크라테스가 하고 싶었던 말일 수 있다는 유추를 가능케 하기 때문일 게다.
하지만 이 말이 동서고금을 통해 회자되고 있는 건 수많은 예술가들이 유명을 달리해도 그들이 남긴 작품은 오래오래 살아 숨쉬기 때문이다.
▲원로시인 조병화씨와 중진 소설가 이문구씨가 최근 이 세상을 떠났다.
우리나라의 최다작 시인으로 무려 52권의 시집을 남긴 조병화씨는 고독과 낭만의 로맨티스트요, 순수문학의 외길을 걸었다.
이문구씨는 능수버들처럼 척척 늘어지고 휘감기는 사투리와 판소리 사설을 되살린 듯한 문체로 개성적인 세계를 펼쳤다.
이들의 타계는 우리 문단의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대구 지하철 참사 여파에다 우리를 더 우울하게 만드는 이 이른 봄에 경주 출신으로 1978년에 타계한 청록파 시인 박목월의 시를 망라한 '박목월 시전집'(민음사 펴냄)이 빛을 봤다는 낭보도 들린다.
기존의 시전집에 실리지 않은 102편을 포함해 466편을 담은 이 시전집은 '청록집' 이후 '산도화' '난.기타' '청담' '경상도의 가랑잎' '무순' '크고 부드러운 손' 등으로 이어지는 그의 시세계의 변모와 궤적 등을 되짚어 보게 하는 새로운 전기도 만들고 있다.
▲일찍이 '북에는 소월, 남에는 목월'(시인 정지용)이라는 칭송을 받기도 했던 그의 시세계는 '삶의 애환을 포괄하면서도 현실에 대응하는 적극적인 자세를 내세우는 법 없이 천품의 가락을 노래'(문학평론가 권영민)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향토 경주 출신답게 친화력이 두드러지는 자연에서 출발, 생활인 시절을 거쳐 죽음에 대한 달관에 이르는 시적 여정을 보여주었던 그는 빼어난 언어 감각과 향토적인 서정을 바탕에 깔고 부단히 변모를 거듭했던 시인이었다.
▲'하늘엔 별, 땅엔 꽃, 사람엔 시'이며, 시를 '영혼이 잠자는 집'이라 했던 조병화씨는 이제 그 집에 들고, '관촌수필'의 작가 이문구씨는 영원한 고향인 관촌으로 돌아간 것일까. 박목월이 '나그네'에서 '강(江)나루 건너서/밀밭 길을//구름에 달 가듯이/가는 나그네//길은 외줄기/남도(南道) 삼백리(三百里)//술 익는 마을마다/타는 저녁 놀//구름에 달 가듯이/가는 나그네'라고 노래했듯이 우리 모두가 나그네다.
아무튼 이들의 시와 소설이 짧은 인생의 메마른 영혼들을 살찌우고, 길이 새롭게 빛날 수 있기를 염원해본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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