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쟁력 강화 교육체계 붕괴

WTO(세계무역기구) 교육개방이 교육.사회계의 시급한 현안으로 떠올랐다.

WTO 서비스 협상 양허안 제출 시한이 이달말로 다가왔기 때문. 서비스 협상은 당초 교육 뿐만 아니라 의료, 문화 등도 포함됐으나 의료와 문화 분야는 유보됐다.

이에 대해 교육.시민단체들은 지난해 10월 'WTO 교육개방 저지 공동투쟁본부' 결성, 지난 10일 홍근수 목사 등 재야 인사와 시민단체 대표 등으로 구성된 33인 범국민 대표단 발족 등을 통해 조직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15일에는 대구 민주당사앞 등 전국적으로 교육개방 저지 범국민대회가 열리는 등 이달말까지 이와 관련된 행사들이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무엇이 개방되나

이번 WTO 서비스 협상 양허안에는 법률, 교육, 국제배달, 부동산 중개, 디자인 서비스 등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당초 예정됐던 영화상영 서비스(스크린 쿼터), 뉴스제공업 서비스 등 라디오.TV, 병원 등 보건의료 서비스 등은 제외됐다.

이 가운데 교육 분야는 공공성을 감안해 초.중.고등학교 분야는 개방 대상에서 제외되며 대학 이상의 고등교육과 성인교육 서비스 가운데 비영리학교법인을 조건으로 전문대 이상의 대학 또는 어학교육 등을 목적으로 한 학원 설립을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6월 36개국을 상대로 12개 분야에 걸쳐 서비스 시장개방에 관한 양허요청서를 제출한 뒤 미국 등 18개국과 양자협상을 가졌으며 지난달까지 26개국으로부터 양허요청서를 접수했다.

지난 3일부터는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주요 개도국들과 양자협상을 가졌다.

WTO 회원국들은 양허요청서 제출 및 양자 협상 결과 등을 토대로 1차 양허안을 3월말까지 제출한다.

양허안은 다자협상을 토대로 했기 때문에 제출되면 국제법적 효력을 가지므로 철회가 불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다.

◇왜 문제인가

정부는 그동안 교육 서비스가 질에 관계없이 동일 수준의 가격으로 공급됨으로써 공급자의 경쟁력 약화, 소비자 선택의 폭 제한 등을 불러왔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학부모의 선택권을 인정하고 공급자보다 소비자의 이익을 보장하는 시장에서 교육 서비스가 공급될 때 성과도 커질 수 있다는 논리다.

고등교육 이상의 단계에서는 외국의 교육 서비스를 이른바 '보완재'로 활용하고 그 여력을 초.중등 교육에 투입하는 '선택과 집중'의 원칙을 수용해야 한다는 것. 이를 통해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우리 교육체제를 국제화하고 경쟁력과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공동투쟁본부측은 "교육은 서비스 상품이 아닌 만큼 국가 경쟁력 강화라는 이름 아래 교육개방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고 반박했다.

교육은 국민의 사회적 기본권이고, 우리 교육의 내실화는 내부적으로 이뤄질 문제이지 결코 외국 교육기관과 외국인 교수, 강사에 의해 이뤄질 수 없는 문제라는 것. 교육시장이 개방되면 국민은 더욱 엄청난 교육비에 시달리게 되고 교육세습사회가 도래할 것이라는 지적도 만만찮다.

◇우려되는 상황들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될 교수, 교사들은 이번 개방이 단순히 대학.성인교육 개방에 그치는 게 아니라 국가 교육체제의 근간을 뒤흔들 것이라며 걱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대학 진학을 초.중등 교육의 정점으로 여기는 현재의 교육체제, 학부모들의 대학입시 과열, 학벌 중심 사회 등 우리의 특수성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

개방에 따라 가령 미국의 유명대학이 국내에 분교 형태의 대학을 설립할 경우 가뜩이나 신입생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대학들의 몰락은 자명하다.

학부모들로서는 국내 초.중등 교육을 거쳐서는 진학이 쉽지 않은 외국계 대학에 자녀를 보내기 위해 학원 수강, 과외 등 엄청난 사교육비를 초등학교나 유치원 단계에서부터 퍼부을 수밖에 없다.

물론 이는 일부 부유층들에게 해당되는 부분이지만 공교육 정상화에 미치는 악영향은 엄청날 게 분명하다.

대학 교육비 인상도 충분히 예상된다.

대학 등록금이 자율화될 수밖에 없으므로 1천만원대의 등록금도 현실화할 수 있으며 기부금 입학제도 전면 허용될 것이다.

외국계 대학들이 수익성에 초점을 맞춘다면 대학의 연구기능도 대폭 축소될 수밖에 없다.

교수, 교사들은 이밖에도 많은 우려들을 나타내면서 외국의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교육개방 이후 캐나다에서는 8년 사이 등록금이 두배로 올랐고 멕시코에서는 국공립대학이 사유화, 등록금이 7천500배나 뛰었다는 것. 대학들의 고의 파산으로 인한 학생 피해, 열악한 교육시설, 학위 매매 등의 사례도 있다.

교육계에서는 의료나 문화 분야 경우 그동안 관련 단체들의 논의나 반대운동 등이 계속돼 이번 개방에서 제외됐지만 교육 분야는 논의조차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개방의 주체 역시 교육부가 아니라 외교통상부가 됨으로써 통상적인 실리만 따졌을 뿐 교육 자체의 문제에 대해서는 소홀했다는 것. 전교조 대구지부 임성무 정책실장은 "WTO 협상은 강요되는 것이 아니므로 지금이라도 얼마든지 교육 분야를 제외할 수 있다"며 "개방의 심각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교육부가 앞장서야 할 문제"라고 했다.

김재경기자 kjk@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