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좀머 씨 이야기'는 매일같이 걷기만 하는 남자 좀머 씨의 별난 일상을 한 소년의 눈으로 그려내고 있다.
꼭두새벽에 배를 타고 일나가는 어부들은 자기들 만큼이나 일찍 집을 나서는 좀머 씨와 마주치기 일쑤였으며, 아이들은 아침 8시 졸린 눈으로 학교에 갈 때 이미 벌써 몇 시간전부터 걸어다니고 있는 그와 마주치곤 했다.
점심때쯤 아이들이 집을 향해 갈 때면 어느새 그가 휙 나타나 앞서갔고, 잠자리에 들기전 창문밖을 보면 호숫가에 그의 깡마른 모습이 그림자처럼 나타나 서둘러 걸어가곤 했다.
그의 그런 모습은 일년 내내 변함이 없었다.
사람들에게 좀머 씨의 두 다리는 단지 몸을 앞으로 밀어내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막상 마을의 그 누구도 좀머 씨가 어디를 그렇게 다니는지, 무엇때문에 그렇게 잰 걸음으로 하루에 열대여섯 시간씩 걸어다니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다 5,6년 후 어느 가을 밤, 우연히 소년의 눈에 띈 좀머 씨는 자신이 늘 걷던 길가의 호수 속으로 사라져갔다.
틱낫한 스님의 방한으로 우리나라에서도 '걷기'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질 듯 하다.
평화를 경험하기 위한 틱 스님의 '걷기 명상'은 매우 단순하고 쉽다.
'숨을 쉬라, 미소를 지으라, 그리고 평화롭게 걸어라'. 좀머 씨와 틱낫한 스님. 두 사람 모두 걷는 사람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그 걸음의 성격은 여러모로 달라보인다.
좀머 씨는 늘 혼자서, 어디로 가는지도, 왜 걷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앞만 보고 걷는다.
그리고 언제나 쫓기는 사람처럼 허겁지겁 걷는다.
얼굴은 무표정.
반면 틱낫한 스님의 걷기 명상은 혼자서도, 여럿이서도 할 수 있으며, 그 목적은 마음의 평화를 얻는 데 있다.
자기 마음을 살펴 신뢰·사랑·자비의 씨앗을 싹트게 하며, 이를 잘 자라도록 하는데 집중한다.
걸음은 한껏 느려지고, 입술에는 평화의 미소가 떠오르게 된다는 것이다.
이라크 전쟁의 피냄새 속에서도 봄꽃나무들은 속속 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세상이 아무리 어지럽게 돌아가더라도 내 할 일은 세상을 아름답게 밝히는 것'이라고 말하는 듯 하다.
이 봄, 어딘가로 달음박질하려는 마음을 잠깐 붙들어 매어두고, 한 번 천천히 걸어보면 어떨까. 굳이 틱 스님을 흉내내지 않더라도 '빠름'이 미덕이 돼버린 일상에서 때로는 거꾸로'느림'의 여유에 마음을 맡겨보는 것, 그리고 그 마음밭에 평화의 씨앗을 심고 가꾸는 것은 언제나 가치있는 일이므로.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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