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 초가 되면 각급 학교는 학급 반장, 전교 회장단 선거가 이어지면서 민주주의의 경연장을 방불케 한다.
교실에서, 운동장에서 후보들의 유세와 선거운동이 벌어지는 모습은 어른들의 선거와 다를 바 없다.
그러나 떠들썩한 건 그때뿐이다.
선거가 끝나고 나면 공약은 온데간데없고 실질적인 자치활동은 찾아보기 힘들다.
교사들조차 어린이회, 학생회를 학교 운영의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다.
활동할 프로그램도 없다.
학생들은 학교교육 과정에서 이미 왜곡된 선거민주주의를 당연시하는 체념부터 배우고 있는 것이다.
▲빗나간 선거 문화=그래도 학급 반장 선거는 나름대로 민주적이라는 게 교사들의 얘기다.
아직도 떡볶이나 과자 등을 대접하며 지지를 부탁하는 사례가 없는 건 아니지만 선거운동이나 절차가 비교적 단순하기 때문에 큰 무리는 없다는 것. 그러나 전교 회장단 선거에서는 상황이 달라진다.
특히 초등학교에서는 전교 어린이회장단을 대단한 감투로 여기는 학부모들이 적잖기 때문에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다.
한 초등학교 교사의 얘기. "근처 웅변학원을 이용하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연설문 원고를 대신 써주는 건 말할 것도 없고 강사 지도 아래 맹연습을 합니다.
심지어 유세 때 입을 옷까지 일러주죠. 그 비용으로 적게는 수십만원, 많게는 백만원대를 받는 곳도 있습니다.
학교 근처 학원의 경우 후보 몇 명을 지도하면서 이른바 선거 특수를 누리기도 합니다".
선거가 끝나고 나면 관행처럼 되풀이되는 학부모들의 당선 사례도 뿌리뽑아야 할 폐해다.
자녀가 전교 회장단에 뽑히고 나면 교사들의 회식 자리를 마련해야 하는 것은 물론 수백만원대 기부금까지 내놓아야 한다는 불문율이 공공연하게 이어지고 있는 것. 심지어는 회장에 당선된 학생의 가정이 기부금을 내놓을 형편이 안되자 담당 교사가 재선거를 하려다 물의를 빚은 경우도 있었다.
▲허울뿐인 학생회=웅변학원을 다니고 비용까지 수십만, 수백만원을 들여 전교 회장단에 선출된다고 해도 돌아오는 역할이라곤 얼굴마담 수준인 게 학교의 현실이다.
아침 조회나 교내 방송 등에서 사회를 보거나 입학식, 졸업식에서 대표 인사와 송사, 답사를 하는 정도.
전교 학생회 역시 별다르게 결정하고 집행할 내용이 없기 때문에 참가할 의미를 느끼지 못하겠다는 학생이 적잖다고 교사들은 말한다.
학생회 담당 교사나 학교장 등이 학생회의 역할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 학생회는 단지 학교측이 미리 결정해둔 사항을 의결하거나 이웃돕기 성금 액수를 얼마로 할 건지 따위의 문제에만 결정권을 가질 뿐이다.
학교 안팎에서 겪고 있는 자신들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토론하고 결정하는 학생자치의 틀은 꿈도 꾸기 힘든 상황인 것이다.
▲어른들이 먼저 변해야=지난해 학생회를 맡았다는 한 중학교 교사는 "학기초에 새로운 형태의 학생회 운영을 구상해 봤는데 학교장은 말할 것도 없고 교사들조차 학생자치의 필요성에 대해 고민하지 않아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학생회의 자치 역량을 키우기 위해 작은 일이라도 학생회가 책임지고 결정해 집행할 수 있도록 해 주려는 인식 변화가 급선무라고 했다.
학생회 간부들이나 동아리 대표 등이 자유롭게 모일 수 있는 공간, 이들에게 지도력이나 회의진행능력 등을 키워줄 수 있는 리더십 프로그램 등도 학교 단위에서 고민해야 할 내용들이다.
또한 학생들을 학교 운영의 한 주체로 인정하고 이들의 목소리를 받아들임으로써 학생들 스스로 능동성을 길러갈 수 있도록 하는 것만이 학생회를 진정한 학생들의 자치기구로 만드는 길이다.
새학기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부터 소풍이나 수학여행, 학교축제 등에 이르기까지 학생들에게 맡겨도 좋을 일들은 충분해 보인다.
김재경기자 kj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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