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함께 만드는 학교-(3)수학여행 대산 체험학습

"학창시절 수학여행은 어디 다녀오셨나요". 30대나 40대에게 물어보면 대답은 한결같다.

"국민학교 땐 경주, 중학교 땐 남해, 고등학교 땐 설악산이었죠". "기억나는 거 있나요"하면 "하루 종일 버스 타고 유명한 곳 내렸다 탔다 하다가, 비좁은 여관에서 친구들하고 술 마시고 춤추며 놀았던 생각뿐"이라는 것이다.

요즘 학생들에게 물어도 대답은 비슷하다.

"설악산 가죠. 사람들에 밀리고 치여서 구경은 대충이고, 그저 시간만 때우고 오는 거죠". 학교가 아무리 쉽게 변하지 않는 곳이라고 해도 교육활동의 연장인 수학여행이 10년전, 20년전과 달라지지 않는다는 건 심각한 일이다.

학교 관계자들은 교통, 숙박 등의 어려움을 얘기하지만 바꿔볼 생각이 없다는 데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언제나 같은 때 같은 곳=지난해 대구의 82개 고교 가운데 수학여행지로 설악산을 다녀온 학교는 67개. 무려 81.7%나 된다.

제주도 여행 경비가 다소 낮아지면서 11개교가 찾은 게 과거에 비해 그나마 달라진 점. 시기별로 살펴보면 4월 28개교, 5월 27개교로 이 기간에 다녀오는 학교가 전체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2학기 들면 대학입시, 학교 축제 등으로 인해 수학여행 가기가 쉽잖다는 이유.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학교 연간 일정을 작년 그대로 하는게 편하고, 한 학년이 한꺼번에 같은 곳에 다녀오는 게 편하다는 발상이 깔려 있다.

중앙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작년부터 설악산을 수학여행지로 선택하는 중학교도 부쩍 늘었다.

2박3일만에 충분히 다녀올 수 있는 데다, 단체 숙박지 구하기가 설악산만큼 편한 곳이 잘 없기 때문. 중학교는 입시나 축제 등과 무관하므로 가을에 다녀와도 무방하지만 역시 학교 연간 일정을 작년대로 하다 보니 학생이 미어터지든 말든 봄에 가는 곳이 많다.

한꺼번에 같은 장소에 수학여행이 몰리게 되면 문제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같은 돈을 주고도 숙박시설이나 식사의 질은 떨어지고, 관광버스도 구하기 어렵다.

한 고교 교사는 "관광지에 가면 가만 있어도 앞으로 밀려갈 정도로 학생들이 많으니 제대로 둘러보는 건 꿈도 못 꾼다"고 했다.

▲경비는 제각각=같은 곳에 다녀온다고 해도 학교에 따라 수학여행비는 차이가 난다.

전교조 대구지부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설악산을 다녀온 대구의 10여개 중학교 여행비는 7만~7만2천원이었다.

그런데 같은 설악산을 다녀온 ㄷ중, ㅅ여중 등은 5만8천~6만2천원을 받았다.

몇월, 몇째 주, 무슨 요일에 가느냐에 따라 경비가 다를 수 있다고 해도 학생 1인당 1만원 이상 차이가 나는 건 의심스런 부분이다.

경비 차이를 내는 결정적인 요인은 학교 직영으로 하느냐, 여행사에 위탁하느냐에서 찾을 수 있다.

학교 직영으로 할 경우 방학 동안 교사들이 사전 답사를 다녀와야 하고, 직접 계약하고 경비를 관리해야 하는 등의 부담이 있지만 저렴한 건 분명하다.

위탁하면 왜 비쌀까. 전교조 교사들은 위탁 여행사와 숙박업소, 학교 간에 오가는 검은 돈에 주목하고 있다.

학교측이 여행사에 위탁하면서 교장 인사치레, 교사 회식비 등을 요구하기 때문에 학생들 부담이 커진다는 것. 이에 대해 여행사 관계자들은 "교사들이 4, 5월을 고집하고 토요일은 빼야 하는 등의 조건을 내세우기 때문이지 리베이트를 이유로 보는 건 곤란하다"고 했다.

어느 쪽의 주장이 옳건 학생들의 부담을 줄이려면 교육청이 철저히 조사하고 합리적인 방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주제가 있는 체험학습으로=지난해 한 중학교는 수학여행으로 서해안 갯벌 탐사를 다녀왔다.

숙소를 대학 수련원으로 정할 수 있어 저렴한 비용에 깨끗한 시설을 이용하며 알찬 여행이 됐다고 한다.

가족 단위 여행이 보편화한 요즘 관광성 수학여행은 없느니만 못하다는 게 학생, 교사들의 평가다.

편하니까 설악산 다녀오자는 사고방식은 비교육적이라는 비판도 있다.

교사들은 수학여행이 학습의 연장이자 교과서를 체험하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학년 단위가 아니라 3, 4개 학급 단위로 테마를 정해 떠나면 교통, 숙박 등의 문제도 쉽게 해결할 수 있다.

학교측은 학생 관리 어려움, 사고 위험 등을 이유로 이를 꺼리지만 학생들에게 중학교 때, 고교 때 단 한번뿐인 수학여행이라면 학교와 교사들이 그만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

대구시 교육청 한원경 장학사는 "교육과정에 나오는 여행지, 유적 등을 묶어서 안내해주는 전문인력도 쉽게 구할 수 있으므로 학교측이 조금만 열린 자세를 가진다면 학생들에게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을 하게 해줄 수 있다"고 했다.

결국 학교장과 간부 교사들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수학여행은 학생들에게 전혀 다른 의미가 될 수 있는 셈이다.

김재경기자 kj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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