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포럼-파병과 명분

전쟁의 명분이란 것은 정말로 헷갈리는 것들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은 멀쩡한 나라를 침공해놓고는 "아시아를 구미의 지배로부터 해방시켜, 대동아 공영권을 건설하기 위한 전쟁이다"고 명분을 내걸었다.

실제로 일부 국가에서 일본군이 해방군 대접을 받기까지 했다.

브레즈네프 시절의 소련은 어떤가. 68년 '프라하의 봄'으로 불리는 체코의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추구에 대해 "이념이 주권에 우선한다"는 소위 제한 주권론을 들고 나와서는 무참히 무력으로 민주화의 싹을 잘랐다.

99년 유고의 코소보에서 세르비아계가 알바니아계에 대한 인종청소가 있었다.

그러자 NATO(북대서양조약기구)는 "인권이 주권에 우선한다"며 유고에 대해 무자비한 폭격을 단행했다.

UN의 동의를 구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다만 폭격 후 평화유지군 배치 때에는 안보리 동의를 구했었다.

17세기 베스트팔렌 조약 이후 세계질서의 기본이었던 주권시대가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헷갈리는 일은 우리나라에도 있었었다.

95년에 있은 김숙희 교육부장관의 '6.25는 명분 없는 전쟁이다'라는 요지의 발언이다.

동족간의 분쟁이었기 때문이란다.

문제의 발언 요지는 '군이 왜 존재하는가. 명분 있는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서다.

6.25와 월남전은 명분있는 전쟁이냐에 대해서는 확연하게 대답하기 어려운 난제를 안고있다'는 것이다.

이 논리대로라면 통일을 위해서든 어떻든 민족간 전쟁을 한 김유신이나 왕건 등은 명분 없는 전쟁을 한 역사의 영웅들이다.

문제는 다수는 아니지만 김장관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점에 있다.

이렇게 명분이라는 것이 무상하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한 것이다.

강대국의 악어의 논리로 제 멋대로이고 다른 명분은 시대에 따라 바뀌기도 하기 때문이다.

명분이란 것이 이러할진대 그렇게 구애될 필요가 있을까.

물론 그렇다고 명분이 허상(虛像)인 것만은 아니다.

몇해전 일본의 나카니시 데루마사(中西輝正) 교수는 미국의 힘은 우주의 지배와 정보와 의제(儀制)의 지배, 그리고 마인드의 지배에서 온다고 했다.

풀이하자면 군사력, 경제력, 국제 여론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번 이라크 전쟁에서는 마인드의 지배에서는 실패하고 있는 것 같다.

그동안 심리전 수행을 위해 일부러 남겨 두었던 TV방송국과 공보처를 폭격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천하의 미군도 단기전을 포기하는 등 작전 실패의 징조가 이를 방증하는 것 아닐까.

그러나 분명한 것은 너무 명분을 중히 여기다가 전쟁에서 패한 송양지인(宋襄之仁)의 고사에서도 보듯 명분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역시 실리나 현실이 더 중요한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이라크 전쟁 파병에 대한 답이 나와 있는 것 아닌가. 도덕적 잣대냐 국익잣대냐로 논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덕적 잣대를 중시하는 측도 명분보다는 국익차원에서 토론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양측 주장 모두에 장점과 단점이 얽혀 있다.

어느 것을 중시하느냐 하는 선택의 문제인 것이다.

또 각국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개념도 확실치 않은 것이 많다.

가령 침략전쟁이라는 개념도 그렇다.

안보리 동의를 거치지 않았다거나 주권국가론에 의하면 그렇게 되지만 인권우선론이나 테러방지와 안보리 결의 1441호 해석에 따라서는 달라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인정하는 나라가 적어서 그렇지 미국도 이라크를 후세인의 공포정치로부터 해방시키고 민주화 시키겠다는 명분을 내걸고는 있다.

이라크와 북한이 다르냐 아니냐 하는 문제도 그렇다.

미국이 중시하는 반(反)테러 입장에서 보면 이라크와 북한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라크는 이념적으로 테러를 지원하는 골수이지만 북한은 경제적 이득 때문에 미사일 등을 파는 수준이다.

9.11테러에 대한 대응도 달랐다.

북한은 테러에 대한 비난 성명까지 냈으나 이라크는 미국이 저지른 범죄의 대가라며 오히려 환영의 뜻을 방송했다.

어떻든 활발한 토론은 좋은 것이다.

또 파병찬성도 반대도 모두 애국의 길이다.

그런데 논리의 비약 같은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일례로 정적을 무자비하게 살상하는 후세인이 저지른 범죄중 쿠르드족 독가스 살상이 있다.

그런데 미국이 제공한 것이므로 미국이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동차 사고가 났을 때 책임은 운전사에 있지 않고 현대자동차나 기아자동차에 있다는 말이 된다.

이런 것들은 낙선운동과 함께 너무 나가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는 토론공화국 정착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서상호(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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