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복권의 범위는 언제나 시빗거리다.
죄값을 치르다가 행형(行刑)성적이 모범이어서 "이만하면 일찍 사회에 내보내어도 되겠다"고 판단되는 '백성들'에게 사면.복권의 혜택이 주어진다면 누가 바지 가랑이를 잡겠는가. 화해와 관용을 빌미로, 선의의 모범수에 섞어서, 선고(宣告)의 잉크가 채 마르지도 않은 후안무치(厚顔無恥)한 정치인과 관료, 경제인들을 너무 쉽게, 마구마구 풀어줬으니까 문제였다.
▲이런 상황의 반복이 사회전반에 '불감증'을 확산시키고 나아가 "나만 잘못했냐?"하는 빗나간 저항의식까지 생기게 했음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사면은 부패의 양(量)에 비례하는지도 모른다.
6공(共)때는 수혜자가 그래도 1만명이 채 못됐으나 YS땐 4만4천명, 다시 국민의 정부 시절에는 무려 7만6천여명이 은혜를 입었다.
대통령 취임기념과 임기말 선심정책으로 DJ가 1천만 교통사범의 벌점을 없애준 대사면령은 빼고서도 그렇다.
이걸 고마워하고 반성했으면 교통법규 위반자가 대폭 줄어야 마땅한데 그대로인 걸 보면 법 알기를 우습게 아는게 틀림없다.
▲기실 대통령의 사면권이란 것은 러시아의 니콜라이 황제시절의 은사권(恩赦權)이 그 시발로, 생살여탈권을 손아귀에 쥔 전제군주가 베푸는 '기적'에 속했다.
1849년 도스토예프스키가 사회주의 모임에 참여했다가 체포돼 총살형을 선고받고 처형대에서 처형되기 바로 직전 니콜라이가 사형중지의 생색을 내지 않았더라면 오늘날 '러시아의 대문호'는 역사에 없을 터였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사면은 절대 기적이 아니다.
너무도 흔해빠졌으므로.
▲새 정권의 부패방지위원회가 어제 첫 보고회를 갖고 부패공직자에 대한 사면 복권.감형을 대폭 축소하고 불법수익에 대해 강력한 몰수.추징 대책을 세우겠다고 큰소리쳤다.
국제투명성기구가 매겨놓은 국가별 부패인식지수(CPI)도 현재 40위인 것을 2년후엔 대만수준(28위)으로, 임기말엔 일본수준(20위), 2010년엔 영국수준(10위)으로 끌어올린다는 야심찬(?) 포부를 세웠다는 거다.
태산명동(泰山鳴動)이다.
▲그러나 다이어트한다고 살 다 빠지고, 계획 세운다고 다 성공하나? 역대 정권이 집권초마다 내걸었던게 이 공식인데 구치소 들락거리는 정치인과 공직자, 재벌들의 행렬은 지금도 멈춤이 없어서다.
상탁하부정(上濁下不淨), 읍참마속(泣斬馬謖)-노무현 대통령부터 자기측근에 가혹하지 않으면 헛일이다.
부패를 줄이면 논란많은 사면.복권은 자동으로 줄일 수 있다.
강건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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