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온 세계가 전쟁 이야기로 어수선한 상황이다.
특히 우리 한국은 이 전쟁에 동참할 것인가 불참할 것인가를 놓고 심하게 몸살을 앓고 있다.
미국과 영국이 이라크와 벌이고 있는 전쟁을 보고 있노라니 과연 인간의 삶에서 전쟁이라는 폭력적 계기는 불가피한 것인가에 대해서 새삼스럽게 고민하게 된다.
헤겔이라는 철학자의 주장처럼 삶은 인정을 받으려는 투쟁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서 존재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할 때 투쟁은 불가피할 것이며, 각자는 그 투쟁 속에서 자신의 본연의 자리를 찾으려고 하는 것 역시 당연한 일일 것이다.
21세기 오늘의 세계는 사실상 '보이지 않는 전쟁', 이른바 경제전쟁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지금 가시화된 이 전쟁도 바로 이와 같은 경제전쟁의 연속선에 있다는 것은 세상의 돌아가는 이치를 조금이라도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알아차릴 수 있는 부분이다.
이처럼 전쟁의 역사는 소유욕의 역사였다.
인류 초창기의 전쟁이 땅따먹기 싸움이었다면, 지금의 전쟁은 돈따먹기 싸움이 아닐 수 없다.
어쩌면 현실의 역사는 홉스의 주장처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상태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비록 우리의 삶이 이렇게 투쟁할 수밖에 없는 슬픈 운명을 지니고 있다고 하더라도, 투쟁에도 합리적 절차와 명분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만약에 우리의 투쟁이 자신의 욕구만을 추구하는 야만적인 형태를 지니고 있다면 우리의 삶이 짐승의 삶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적어도 인간은 인권과 정의가 자리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역사를 꾸려가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지금 전개되고 있는 이 전쟁은 정당성을 인정받기에 다소 무리한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우선 전쟁이 시작될 당시부터 이미 합리적 절차가 무시된 상태였다.
세계 평화와 정의 및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마련돼 있는 국제연합이라는 기구는 전혀 그 존재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세계가 함께 합의한 이 기구의 존재 의미를 미국은 스스로가 무시해 버림으로써 자기 모순을 범하였다.
아무리 이라크가 세계평화를 해치고 우리의 안전을 위협한다고 하더라도 미국은 세계 평화를 위해서 이 기구를 설립하는 데 동의한 이상, 이 기구의 의사 결정을 존중해야 할 당연한 의무가 있다.
그러나 미국은 이러한 합리적 절차를 무시하고 '로마의 평화'가 곧 '세계의 평화'라는 저 로마제국시대의 힘의 논리를 또 다시 관철시키려고 하고 있다.
미국이 추구하고 있는 이와 같은 측면은 전쟁의 현장에서도 목격된다.
최첨단무기를 동원하여 민간인을 죽이지 않고 깨끗한 전쟁을 치르겠다던 미국의 약속은 이미 무너졌다.
가엾은 어린이와 노인들이 처참하게 죽어가고 있다.
전쟁이 전쟁인 이상 깨끗할 수가 없는 법이다.
미국은 이제 제국의 미래를 위해 주변의 다른 국가들을 힘으로 제압하는 시대를 중단하고, 세계가 함께 하는 시민의 시대를 열어가야 할 것이다.
비록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세계의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미국은 신의 나라가 아니다.
신이 인간을 심판하듯이 심판할 주인의 자리를 미국이 독점적으로 부여받은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미국은 저 유명한 철학자 칸트가 '영구평화론'에서 주장하였듯이, 자국의 국내 원칙을 국제원칙에까지 확장하여 타국을 미국처럼 다루겠다는 것은 과도한 간섭이 아닐 수 없다.
폭력 역시 영국의 철학자 포퍼의 주장처럼 약자가 공격을 받아 자기 방어를 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행사하는 것은 인정될 수 있다고 하더라고 공격을 목적으로 폭력이 이루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즉 방어적 폭력은 인정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공격적 폭력은 금지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 미국이 전개하고 있는 폭력은 방어적 폭력이 아니라 공격적 폭력이다.
미국은 다시 UN으로 돌아와 합리적 절차와 명분을 확보할 수 있는 모범적인 국가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우리 한국 역시 미국이 이런 나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영구평화는 한 나라의 일방적 주도 아래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함께 할 때 이루어질 수 있다.
김석수(경북대 교수.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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