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론-실용과학에 대한 변

얼마전 평소 나를 잘 이해해주는 어느 공직자로부터 전화와 팩스를 받았다.

독실한 신자인 그는 자신이 다니고 있는 교계에서 전국에 배포하는 주보에 나와 관련된 신부님의 칼럼이 있었다며 그 글을 보내왔다.

신부님의 칼럼을 읽고 나는 깊은 반성을 하면서 먼저 나의 부족함을 자탄하게 됐다.

일간지에 실렸던 나의 글을 읽고 신부님은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나에게 큰 깨달음을 주셨다.

그는 신문에 실린 나의 글중 "과학자는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기업에 효자상품을 제공하며, 국가에 미래를 제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과학은 공리주의에 바탕을 두어야지 철학을 논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미사여구보다 국민을 먹여 살릴 과학이어야 한다"라는 부분을 거론하시며 "마치 과학자만이 우리 국민을 위하는 양했다"고 지적하셨다.

또한 인간의 본질과 가치를 연구하는 철학을 '미사여구'라는 말로 폄훼하고, 학문의 순수성을 부정하는 말을 공공연하게 한 것은 물질만능주의에 얼마나 물들어 있는가를 보여주는 극단적인 예라고 덧붙였다.

이같은 신부님의 지적은 적절한 것이라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표현의 부족함도 있겠지만 위에 지적한 글에 대한 내 생각을 소상히 설명하는 것이 나에 대한 이해와 함께 내가 가진 과학관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위의 글중 과학은 공리주의에 바탕을 두어야지 철학을 논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고 한 부분에서의 '철학'은 학문적 분류로서의 철학이 아님을 우선 밝힌다.

이것은 과학자들이 '입으로만의 연구'가 아니라 가시적 성과를 도출할 수 있는 '실질적 연구'를 해야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책상위의 연구가 아니라 실질적인 연구를 강조한 말이다.

다시 말하면 철학만 논하고 있는 '과학쟁이'가 되어서는 안되겠다는 자성의 뜻이었다.

나는 평소 우리의 삶을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하고, 영혼을 맑고 밝게 비추는 역할이 바로 종교와 철학이라고 믿고 있다.

또 과학만이 마치 국민을 먹여살리는 것처럼 보였다면 여러 다른 분야에서 열심히 맡은 바 일을 다하는 분들에게 이해를 구하고싶다.

나는 평소 국민을 먹여살리는 일차 담당자는 농민, 노동자, 금융, 서비스업 등 다양한 직업이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다만 과학도 이러한 직업 못지않은 생산적인 분야가 돼야 한다는 생각에서 위와 같은 표현을 한 것이다.

어떤 이들은 과학기술은 산업에 기여하지도 못하면서 예산만 축내는 골칫덩이라는 비판도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국민을 먹여 살릴 실용적 연구에 매진하자는 스스로의 다짐으로 '미사여구보다 국민을 먹여살릴 과학이어야 한다'는 표현을 했다.

이러한 실용적인 연구에 대해 미래의 과학도들이 더욱 힘을 기울여 주었으면 하는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예산만 축내는 과학이라는 인식을 불식시키고 산업에 기여할 수 있는 과학이 절실한 것이 오늘의 현실이라는 생각에서 이같이 표현했다는 설명을 덧붙이고 싶다.

신부님의 지적은 적절한 것이며 부족한 인간을 계도하는 옳바른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내 자신을 돌아보며 사려깊은 언행을 해야겠다고 다짐한다.

항상 화해와 용서 그리고 "내탓이오"를 가슴에 묻으며 생활하고 있는 내가 신부님의 준엄한 꾸지람에 다시한번 신중함에 신중함을 기울여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신부님, 오랜기간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주십시오. 먼훗날 신부님께서 나의 어깨를 다독거리며 " 당신의 연구업적과 걸어온 길은 인류에게 귀중한 선물이었네"라고 격려해주실 그날을 향해 열심히 연구할 생각입니다.

하지만 신부님, 과학은 국민을 먹여 살릴 과학이어야 한다는 제 소신은 그대로 간직해도 되겠지요?

황우석(서울대 교수 수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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