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그 이름만으로 커피와 아랫목의 따뜻함이 묻어난다.
간혹 부부싸움에서 헐크처럼 '두 얼굴의 아내'가 되기도 하지만, 언제나 그 끝은 사랑이다.
편안하고, 따뜻한 이름의 '아내'. 그러나 '아내의 역사'는 굴종과 속박의 역사였다.
'마누라와 북어는 사흘 걸러 때려야 한다'. 여성 특히 아내를 비하하는 우리의 속담이다.
우리 사회에서 아내의 지위가 어떤 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서양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유방의 역사'를 지은 매릴린 옐롬이 '순종 혹은 반항의 역사'란 부제로 '아내'(이호영 옮김)를 냈다.
인류 최초의 아내 이브에서부터 오늘날 맞벌이 부부에 이르기까지 아내의 역사를 700여 쪽 분량에 녹였다.
아내의 개념, 지위, 역할이 어떻게 형성됐고, 변해왔는지를 잘 보여준다.
히브리어의 '여성(icha)'은 '남성에서 나온 여성'이란 뜻이다.
아담의 갈비뼈로 만들었다는 이브의 태생적 규정이다.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아내는 남편의 '가재 도구'였다.
기독교 교리가 사회 전반을 지배하던 중세에도 아내는 '출산의 그릇' 정도로만 여겨졌다.
성을 타락한 것으로 보고, 금욕을 실천했던 그 시기에 아내는 과부와 처녀보다 아래 지위였다.
옐롬은 '전쟁'을 여성 지위 확보의 '예기치 못한 기회'로 보고 있다.
2차 대전으로 빈 남편의 공간을 채우면서 서서히 여성의 지위 상승이 이뤄진 것이다.
"역사 이래 1950년대까지 아내를 먹여 살리는 것이 남편의 의무였다.
아내는 그 대가로 섹스, 아이, 가사노동을 제공했다". 그러나 맞벌이가 시작되면서 그 틀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여성의 지위가 획득된 것도 불과 50여 년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옐롬은 인습에 맞서 저항하며 살아온 아내들에 대해서도 얘기한다.
저명한 성직자와 사랑에 빠져 당대의 금기에 도전장을 던진 엘로이즈, 혁명의 소용돌이에서 자신과 가족을 지킨 라 빌리루에 백작 부인, 여성의 행복을 보장하는 법 제정을 주창한 미국의 2대 대통령 존 애덤스의 부인인 애버게일 애덤스….
선구적인 여성들의 삶 뿐 아니라 역사의 뒤안길에서 마주치는 평범한 여성의 삶도 그들의 일기, 편지, 회고록, 자서전 등을 토대로 생생하게 그려낸다.
'아내'는 남자의 나머지 절반의 역사다.
그런 의미에서 뒤집어 읽으면 '남편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리고 때로는 반목하며, 때로는 화합하며 살아온 '결혼의 역사'이기도 하다.
728쪽, 2만2천원.
김중기기자 filmto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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