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간데스크-신문의 날에

참으로 이해하지 못할 일이다.

지금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지난 2월18일 오전. 그때, 그 땅속 아비규환속에서 2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을 당시 지하철 기관사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나. 대구지하철공사의 동료 직원들이 한 목숨 내던지고 수많은 승객들을 살리려다 끝내 화마에 희생되기도 했던 그 당시에 정작 기관사는 어디에 있었나.

사고가 난 지 벌써 달포가 지나도록 사체조차 수습하지 못한 수많은 유가족들이 사망자의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고 있으니 원통하게 죽은 영혼들이 아직도 안식처를 찾지 못하고 있을 것 아닌가. 사고 후 사고를 수습해야 할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위치에서 제대로 자기 할 일을 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호화여객선 타이타닉호의 최후를 떠올려 본다.

1912년 4월14일이었다.

뉴욕으로의 처녀항해에 나선 대영제국의 타이타닉이 유빙에 받혀 침몰했다.

2천208명 중 1천513명이 목숨을 잃었다.

영화로 본 타이타닉은 사고 순간을 리얼하게 그려냈다.

침몰하는 여객선에서, 7명의 악사는 거짓말처럼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고 선원들은 보트에 아이와 여자들을 태우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37명의 기관사들도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4월 15일 새벽 타이타닉이 완전히 모습을 감추었을 때 차가운 밤바다에는 보트에 탄 부녀자들만 떠 있었다고 기록은 전하고 있다.

지난 3월26일 충남 천안에서도 어처구니없는 참사가 빚어졌다.

초등학교 축구부 합숙소에서 불이 나 여덟명의 어린 목숨을 앗아 간 것이다.

살아남은 어린이들을 통해 6학년 상급생들의 살신성인이 뒤늦게 화제가 되고 있다.

불 속에서 후배 선수들을 일으켜 깨워 탈출시킨 뒤 자신들은 화마에 희생됐다는 것이다.

선후배간의 동료애 이전에 인간의 원초적인 모습, 인간 정신의 승리를 본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는 곳곳에서 제 2, 제 3의 사고가 보여주듯 여전히 혼돈 상태다.

'나'만 있고 '우리'는 없기 때문이라고 기자는 생각한다.

자기 희생은 고사하고 조금이라도 손해보지 않으려는 풍조가 사회 곳곳에 만연돼 있다.

지하철 화재 참사만 하더라도 아쉬운 대목이 하나 둘이 아니다.

사고도 사고지만 이를 자꾸 키운 뒷처리는 더욱 답답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어찌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모두 어디에 숨어있나. 이렇게 많은 희생자가 났는데도 사회 곳곳에는 지금도 여전히 또다른 참사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지하철이 움직이기까지에는 수많은 기관과 또 사람들이 역할하고 있지 않은가. 있어야 할 사람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고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사고는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다.

신발은 아무리 좋더라도 머리에 덮어 쓸 수는 없는 일이다.

이는 모자가 아무리 헤어져도 머리에 써야 하는 것과 같다.

자리가 있고 그 자리에 맞춰야 하는 것이다.

그러지 못할 때 사고가 난다.

제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그 역할을 해야 한다.

아니, 그 역할을 하도록 제 자리에 맞춰 앉혀야 하는 것이다.

직업윤리라고 할까. 하여간 어떤 형식이든 사회 모든 분야가 제 자리를 찾아 제대로 역할해야 할 것이다.

신문은 제 자리에 있나. 기자는 또 제 자리에 있나. 신문의 날을 맞으면서 다시 한번 자리를 되돌아본다.

새 정부가 언론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신문은 여전히 신문일 뿐이다.

세기가 바뀌고 디지털 시대라고 신문이 그 역할을 포기할 수는 없다.

신문은 여전히 독자들로부터 기사로 심판받기 때문이다.

그 신문의 역할은 권력이나 돈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작은 목소리도 외면하지 않고 그러나 다수결에 흔들리지 않으며 어떤 외압에도 굽힘없는 신문. 100여년 전 드레퓌스의 무죄를 주장했던 에밀졸라의 목소리를 전한 파리의 '새벽신문'처럼 진실은 끝내 밝혀지고야 말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주는 것, 그것이 신문의 역할이다.

사회 모든 구성원이 제 자리에서 제 역할을 하는 사회, 그런 사회에서 제 목소리를 내는 신문이 되도록 신문인 스스로도 노력해야 할 것이다.

신문의 날을 맞으면서 우리 스스로도 다시 한번 자리를 되돌아본다.

(이경우 사회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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